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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브리핑] 200살의 쇼

등록 2009-02-10 11:27 수정 2020-05-03 04:25
200살의 쇼

친구를 잘못 만나면 생일 맞은 사람은 선물 대신 맞는다. 바로 ‘생일빵’이다. 일반적인 생일빵이라면 때리는 사람도 웃고 맞는 사람도 웃는다. 그런데 집에 와서 옷을 벗어보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문제는 단체로 와서 때리다 보니 누가 범인이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생일빵은 한 해 동안 묵은 감정을 푸는 아주 유용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생일을 맞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만났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게 ‘생일빵’을 아끼지 않았다. 청와대가 준비한 케이크의 초는 두 개였다. 왜 두 개였을까. 박 전 대표를 향해 그가 말했다. “200살까지 살아야지!” 덕담이었을까, 악담이었을까. 참고로 이날은 박 전 대표의 57번째 생일이었다.

사진/연합

사진/연합

한국의 CSI

‘미드’(미국 드라마)로 유명한 CSI는 한국에도 있다. CSI는 ‘Crime Scene Investigator’의 약자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범죄현장수사대’ 정도가 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과학수사대’로 통한다. 한국의 CSI는 ‘Cotoori Scene Investigator’의 약자다. ‘꼬투리현장수사대’, 즉 꼬투리를 전문적으로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뜻한다. 우리 CSI는 검찰이 극비리에 운용하는 비밀조직이라는 설이 있고, 검찰 자체가 CSI라는 정보도 있다. 미국의 CSI와 한국 CSI는 비슷한 조직으로 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른 일을 한다. 미국 CSI 수사관은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면봉 하나로 해결해낸다. 때로는 머리카락 하나로 범인을 가려내기도 한다. 반면 우리 CSI는 시시비비가 명백한 사건을 ‘미궁’으로 빠뜨리는 일을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 ‘꼬투리’를 잡아 궁지에 몰린 ‘그분’을 구해내기도 한다.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를 수사한 한국 CSI는 경찰이 용역업체를 동원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았다’. 대신 농성 철거민은 빛의 속도로 구속해버렸다. 민심은 경찰의 살인 진압에 분노했던 것인데, 검찰은 철거민의 폭력성을 입증할 ‘꼬투리’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 CSI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증거를 찾아 극적 반전을 꾀하는 반면, 한국 CSI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꼬투리’를 잡아 사태를 반전시킨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 그랬고, 미네르바 사건 때도 그러더니, 이번 용산 참사 수사에서도 그러고 있다. 그래서 CSI를 일컬어, 청와대를 대신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을 깨끗이 청소해주는 ‘Clean Service Institution’, 즉 ‘청결봉사단’으로 부르기도 한다.

효과

와 가 아닌 신문의 차이를 아는가. 가 아닌 신문은 사건을 좇지만, 는 사건을 만든다. 연쇄살인 피의자 강아무개씨 사건 보도에서도 는 한 건을 올렸다. 이른바 ‘강씨 팬카페’ 사건이다. 가 2월3일 저녁에 강씨 팬카페가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알렸을 때, 이 카페의 회원 수는 무려 4명. 카페 이름은 ‘연쇄살인범 강○○님의 인권을 위한 카페’였다. “강씨와 같은 범죄자도 마땅히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카페의 개설 취지였다. 무려 4명이나 가입돼 있는 카페를 가 어떻게 찾아냈을까. 보도 직후 문제의 카페 관련 뉴스가 인터넷에서 줄을 이었다. 회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회원으로 가입해야 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 개설자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그가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17살 남학생이라는 사실과 함께 실명과 나이, 학교와 집주소도 알려졌다. 카페는 2월6일 결국 문을 닫았다. 이것이 의 힘인 걸까.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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