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 녘이 되자 날갯짓을 시작했다.’
어려운 시대에 영웅이나 예언자가 난다더니, 로마 신화에 등장하던 지혜의 여신이 누리꾼들 앞에 영웅처럼 등장했다. 그의 인터넷 아이디는 ‘미네르바’.
미국발 금융위기로 주가는 아래로, 환율은 위로 치솟는 ‘거꾸로 현상’이 계속되자 공황에 빠진 누리꾼들이 그의 글을 ‘열클’하고 있다.
미네르바는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 8월 말 다음 아고라에 산업은행이 인수하려던 미국 리먼브라더스의 부실화를 정확히 예견한 글을 올렸다. 이 글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한국판 지옥의 묵시록’. 그는 경제 관련 통계와 쉬운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정부의 잘못된 경제 예측과 처방을 지적하는 글을 잇달아 썼다. 그의 글은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퍼지면서 논쟁을 위한 ‘눈팅 필독 항목’이 됐다. 누리꾼들은 ‘만수 형님’(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보다 ‘미네르바의 글’을 더 신뢰하는 눈치다. 그래서 ‘미네르바 신드롬’ ‘미네르바 효과’라는 말이 떠돌았다.
미네르바 효과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경제 문제에 둔감했던 누리꾼들이 경제 문제를 활발하게 토론하는 지적 담론의 장을 인터넷에 열었다는 것과 일반인도 경제 관료나 경제학자처럼 경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비관론자라는 질타를 동시에 받았다. 그가 150여 개의 글을 통해 “우리 경제가 ‘소비의 핵겨울’에 돌입했고, 이제 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관론자라는 비판에 “나는 천민의 눈으로 경제를 보는 현실주의자”라고 맞선다. “망상에서 깨어나 내가 천민인지, 평민인지, 귀족인지, 각자 자기 계급을 빨리 깨닫고 현실적으로 살자”고.
미네르바는 9월18일 “10년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마지막 글을 남겨놓고 유유히 강호를 떠났다. 자신의 정체를 집요하게 캐려는 언론 등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미네르바는 떠나면서 천민들을 향해 두 가지 충고를 남겼다. “2010년 전까지 주식은 쳐다도 보지 말고” “공부하라”는 것. 그리고 천민들에게 (리오 휴버먼 지음)와 (존 머피 지음) 등 2권의 책을 권했다.
“뭣 모르면 당하는 게 아니고 털리는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충고다. 미네르바는 갔어도 ‘미네르바 효과’는 남는다.
허재현 기자 한겨레 취재영상팀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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