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거 좋아하던 내가 누구 땜에 사법시험 공부한다고 맘잡기 시작했는지, 기억나? 드라마 강우석 검사. 폼 나잖아.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부장검사한테 큰소리 땅땅 치면서 할 일 하는 거(나중에 그 모델이 누구라는 거 알고 김새기는 했지만). 연수원과 실무 수습 거쳐 진짜 검사가 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뭐, 그걸로 어찌 알겠냐고 하면 할 말은 없어) 진즉 포기했지만, 어쨌든 그게 원래 내 꿈이었거든.
사실 나, 기대 많이 했다
전설적 선배가 검사가 된다기에, 사실 나, 기대 많이 했다. 조금쯤은 달라지겠지. 적어도 정말 이상한 일 하려고 할 때 “이건 아니다” 말하기라도 하겠지… 뭐 그런 거. 너무 낭만적이라고? 어느 검사 지망생의 ‘잃어버린’ 10년 전 얘기라니까.
밤샘 조사에, 말 안 통하는 상사 밑에서 고생하는 거, 멋있더라. 묵묵히 고생하는 평검사 덕에 다단계 두목도 잡고, 재벌 총수도 포토라인에 세워보고…. 정말 좋아지겠구나 하는 기대 속엔, 형 같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근데 형, 정말 이건… 아니잖아? 대통령이나 경찰은 나도 아는 게 없어 모른다 쳐. 하지만 ‘형사소송법’을 같이 배운 검사들이니 같이 얘기라도 해보자.
집회 연행자 접견을 가보니 잘못 잡아온 사람도 무조건 48시간은 채워야 풀어주더라.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영장청구 시간이 그런 기준이었어?
방송사 사장을 배임으로 기소한 건 법원이 권고한 조정 받아들여서라며? 판사가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조정 권고하면, 누구든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검토하게 되는 거 잘 알잖아.
대형 신문 광고 불매운동을 인터넷에서 공모했다고 ‘공모공동정범’으로 처벌한다네. 온라인 카페, 그거 해봤잖아. 그 사람들이 한 게 공모 맞아? 그거, 직접 행동을 하지는 않고 뒤에서 지시만 하는 악당 수괴 잡으려고 만든 이론이라며.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글 좀 세우는 게 그거야? 신종 공모 ‘수법’이라면, 정말 할 말 없다. 근데 ‘죄형법정주의’가 이런 거였나, 형법 조문을 갖다 붙일 틈새만 있으면 갖다 대는 거?
이런 걸 다 ‘법치’고 ‘엄정한 법 집행’이라고 부르더라. “수사와 구속의 필요성에 따라 수사하고 구속한다.” 이렇게 큰 판단 권한 있는 공무원이 또 어디 있니. 그 많던 권한은 어디에 팽개치고, 이런 걸 ‘법치’라고 그러는 거야. 법으로 밥 먹는 사람 낯뜨거워지게.
불법집회나 횡령 때문이라며 시민단체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다 뜯어가, 우리나라 주요 시민사회단체의 하드디스크가 다 서울지검에 있다며. 뭐 보려고? 우스갯소리지만 ‘관음증 환자냐’는 말까지 있는 거 알아?
하긴, 어떤 검사는 “민변 변호사들이 거짓말로 부추겨서 합법인 줄 알고 애들이 설친다”고 하더라니, 과연 우리가 같은 법을 배운 건지 살짝 자신은 없네.
효과야 확실해 보이겠지. “나를 잡아가라” 검찰청 게시판에 글 쓰던 애들이 잠잠해지고, 며칠 전만 해도 인터넷 카페 회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소환하면서 직장으로 연락했더니, 조용히 벌금 내고 반성문 쓰는 사람도 있다며? 그 덕분에 사회가 조용해지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아 보여?
지구수비대?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마‘형사’ 법으로 사회를 지켜야 한다는 ‘지구수비대’ 사명감. 난 있지, 제발 검사들이 그것만 버려줬으면 좋겠어. 독재나 경찰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방위’한 적은 없다는 거, 형도 잘 알잖아. 대신 이건 어때? 남들이 “저런 놈들은 그저 말 못하게 잡아 가둬야 해”라고 할 때, 그걸 ‘인권’의 잣대로 지긋이 눌러주는 거. 그게 검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아득한 기억 속 교과서 머리에서 본 것 같은데, 또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건가?
알아. 몇몇이 공안 통치니 뭐니 하며 걱정하는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펀드 토막 나는 거 걱정하는 맘이 더 큰 사람들이 더 많아 보여. 근데 형, 군부독재 모른 척하고 쌍쌍파티랑 고고장에 갔던 80년대 대학생들도 모두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날 이야기, 신입생인 나에게 들려줬던 거… 누구였는지 생각나? 그냥 뭐, 그렇다고.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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