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저녁 어스름 무렵 서울 마포구 공덕동 116-25번지 한겨레신문사 옥상 공원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두 군데 화로에 얹어진 건 전남 영광군에서 올라온 청정 돼지고기. 갓 잡아 진공포장된 돼지고기 열 상자가 이틀 전 신문사로 배달됐다. 애독자 김태진(28)씨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기사를 쓰느라 지쳤을 기자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보내온 것이다.
몰려드는 사원들로 옥상은 만원이 되고, 고기 익는 시간은 뱃속 출출한 이들의 젓가락질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식욕과 체면 사이에서 고뇌하며 화로 근처를 몇 차례 기웃거려봤자 고기 한 점 낚아채기 힘들다. 쌈장 찍은 오이로 에피타이저만 즐기다가 눈치 빠른 후배가 아까운 듯 나눠주는 한 점을 겨우 맛본다. 맛있다. 마포 골목길 껍데기집이나 회사 앞 삼겹살집과는 비교가 안 되는 돼지고기 맛에 막걸리 한 잔이 꿀떡 넘어간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오병이어’의 들판이다. 갈릴리 호숫가에 저녁이 찾아들고 예수를 따르던 수천의 무리가 먹을 것 없어 고민할 때 한 어린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어린이를 빼고도 5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는 신약성서의 전설. 어릴 적엔 오병이어가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재생된 것이 아닐까 여겨 그 과학적 가능성을 가늠해보기도 했지만, 이제 알겠다. 예수의 가르침에 영적으로 감화받고 그 감격을 공유하는 수천 명 무리에 속해 있을 때, 물고기 굽는 냄새만으로도 그들은 배부를 수 있었고 약간의 음식을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먼저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식욕을 지울 수 있었으리라. 더구나 예수의 가르침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가 아니었던가.
이웃들의 절박한 외침을 충실히 전달하고 ‘고·소·영’으로 대표되는 부자 권력에 메스를 들이대온 참언론을 격려하는 선물이기에, 이 돼지고기는 한 점만으로도 포만감을 준다. 최근 의 자발적 정기구독 신청이 평년의 10배에 육박하게 늘어날 만큼 격려와 지원이 답지한 것은 우리 제작진 모두를 이미 감화시킨 터다.
차오른 감정을 추스르며 다시 한 번 언론의 자세를 생각한다.
“19세기 영국에서 언론이 권력의 음모를 캐기 위해 잠입 취재에 열심일 때, 헨리 메이휴는 같은 왕국에 사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을 기록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런던 거리를 배회하면서 ‘거리의 사람들’의 삶을 취재해 에 썼다. 그럼으로써 그는 물냉이 따는 소녀와 굴뚝 청소부에게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찾아줬고 갈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들을 지나치면서도 그들의 존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뭇 사람들에게 그들도 인간임을 드러내준 것이다. 일찍이 언론인들이 핵심 원칙으로 세운 것은 바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석’을 조사할 의무였다.”()
‘권력 감시’와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 찾아주기’는 언론의 두 가지 핵심 책무일 터. 지금은 교실에 갇혀 침묵하던 소녀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익명의 존재들이 광장을 가득 메워 권력을 비판하고 있으니, 두 가지 책무는 어느덧 하나가 되는 듯하다. 이 모두를 저널리즘의 기본 요소에서 제외시키려는 것은 언론을 권력 홍보의 수단 정도로나 여기는 무리와 이들에 영합하는 보수 매체들뿐이다.
한 초여름 저녁, 우리는 의 창간자 뵈브메리의 말을 더욱 되새길 뿐이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수상한 냄새를 좇아 한겨레신문사 옥상에 모여든 기자들은 돼지고기보다 진실 한 점을 더 탐하고 있다. 그들의 눈빛이 어느새 하늘에 별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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