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내 나이 11살.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결핍의 시기였다. 학교에선 칠판지우개를 라켓 삼아 탁구를 쳤고, 집에선 십원짜리 동전으로 만든 제기를 찼다. 내 나이 11살은 빨랫방망이로 야구하다 엄마한테 그 방망이로 맞던 시절이었고, 다방구·술래잡기·물총싸움에 정신 팔려 공부는 뒷전이던 시절이었다. 11살 소년의 빈 가슴을 채워준 것은 뭐니뭐니 해도 ‘땅따먹기’였다. 재주만 좋으면 손가락을 세 번 퉁겨 마음껏 영토확장 본능을 채울 수 있었던 땅따먹기는 성실하고 숙련된 ‘노동자’일수록 더 많은 땅을 모을 수 있다는 진리를 일깨워줬다. 내 나이 11살, 나는 손가락의 감각 하나로 ‘답십리의 땅따먹기 1인자’로 등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땅따먹기의 진정한 최고수는 청와대에 있었다.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이 그분이시다. 청와대 수석 중 두 번째로 많은 82억원의 재산을 신고한 김 수석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의 땅을 11살 때 자신의 돈으로 사들였다. 손가락이 아니라 본인 통장에 있던 현금을 뽑아 ‘진짜 땅’을 샀다는 것이 김 수석의 설명이다. 11살 나이에 이미 땅맛을 알았던 이분이야말로 땅따먹기계의 진정한 ‘킹왕짱’이 아닌가.
고소영과 명계남, 태현실 등 아무리 한때 반짝하던 스타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마련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떠서 아직까지 초롱초롱 빛나는 별은 오직 강부자가 유일하다. 강부자 청와대 인사들의 해명이 강부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우선 11살에 자기 돈으로 땅을 샀다는 김병국 수석의 주장은 강부자 헛기침하는 소리다. 거짓 ‘자경사실확인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것으로 물의를 빚은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 다음날 “허위사실이 계속 기사로 나올 경우 엄정 대응하겠다”며 큰소리치는 것은 강부자 헛웃음 날리는 소리다. 고려대 3학년 때 판교 금싸라기 땅을 매입한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이 다음날 “투기는 아니었다”고 변명하는 것은 강부자 헛트림하는 소리다. 무엇보다 이 판국에 “그때그때 휘말리면 점점 능력이 떨어지므로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힌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괄약근을 수습 못한 강부자 헛방귀 새어나오는 소리다.
신지호 한나라당 당선인(서울 도봉구갑)은 민주화 세력의 상징인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꺾고 18대 총선에서 살아남았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국회의원이 되면 꼭 만들고 싶은 법이 무엇이냐고. 신 당선인의 대답은 ‘복면금지법’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은 꼭 복면이나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궁금한 것이 생겼다. 복면이나 마스크는 그렇다고 치자. ‘복면 착용’과 ‘불법 행위’ 사이에서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신 당선인의 고급스런 지적 능력에 대해서는 일단 따지지 말자는 이야기다. 다시 복면과 마스크. 그래, 복면과 마스크는 그렇다 치면 곰돌이나 멍멍이탈은 어쩔 건가. 탈도 안 된다고 해도 방법이 있다. 모자나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수염을 붙이면 감쪽같다. 이건 어쩔 건가. ‘복면금지법’의 쌍둥이법으로 ‘변장금지법’이라도 만들 건가. 여기까지도 좋다. 얼굴을 못 알아보도록 화장을 진하게 하고 나타나면 이건 또 어쩔 건가. 설마 ‘화장 금지 조항’까지 다 마련해두고 있었다면, 신 당선인 당신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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