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짧게는 15년, 길게는 28년을 매일같이 천장과 텔레비전만 바라보다 나선 길. “빨리 뒤졌으면 좋겠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다 버려져, “시설에 안 가면 어떻게 살 거냐”는 부모의 울부짖음에 “집에서 살고 싶다”는 애원이 묻혀, 태어나 처음 대문 밖을 나서던 날은 시설에 보내지던 날이었다. 간혹 부모님 시름 덜어드리려 자청한 이도, 평생 집안에 갇혀 지낼 수 없어 온 이도 있었지만, 중한 장애가 천형인 세상에서 선택이라 말할 수조차 없는 선택이었다.
어떤 ‘주제 넘는 짓’
석암베데스다 요양원에서 다들 20년 넘게 살았다. 조금만 잘못해도 욕설과 험담이 쏟아졌다. 하루 삼시세끼 반찬은 무말랭이와 마늘장아찌, 말라 비틀어진 김치가 전부였다. 지적 장애인들에겐 “먹여주기도 힘들고, 대소변 처리하기도 힘들어” 혹은 “더 자랄까봐” 밥을 조금씩밖에 주지 않았다. 시설 차원의 외출은 1년에 한두 번에 불과했고, 길 건너 슈퍼에 껌 한 통을 사러 갈 때도 신고를 해야 했다. 지난해에는 “사고 나면 시설 책임”이라며 외출마저 금지했다. 시설에서 인연 맺어 키운 아이 저 세상에 보낼 때도 맘껏 울어보지 못했다. 세 살 때부터 20년간 밥 먹이고 똥 치우며 자식처럼 키운 아이였건만, 시설에선 임종길 배웅도 막아섰다. 꿈을 꿀 수도 없었다. 다른 세상을 쳐다보는 건 ‘주제 넘는 짓’이라 학습받았고, “할 말 있다”고 입이라도 뗄 낯이면 “나가”라는 윽박지름만 되돌아왔다. 골백번 더 나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었다. 죽고 싶어도, 쉽게 죽어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자유를 빼앗기고, 삶을 감금당한 채 살았다. 버려진 상처와 ‘쓸모없는 존재’란 낙인을 안고 “빨리 죽기만을 바라”며 40년을, 60년을, 한평생을 살아왔다.
그런 그들이 지금 서울시청 앞에 섰다. 석암재단의 비리를 고발하며 △책임자 처벌 △시설인가 취소 △장애인의 탈시설화를 외치며 3월26일부터 천막농성에 돌입한 것. 지난해 시설 비리를 파헤쳐 고발했을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오게 될지 몰랐다. “죽을 때까지 있는 비용”이라며 몇천만원씩 가족에게 받아낸 것도 모자라 장애수당을 가로채고 국고 보조금을 유용한 것이 괘씸해, 원생들 몰래 더 외진 곳으로 시설을 이전하려 한 것에 놀라, ‘안 되면 죽기밖에 더할까’ 하는 심경으로 나섰다. 석암재단 전 이사장이 구속되고 현 이사장과 시설장이 불구속 입건됐지만, 두 달 만에 전 이사장은 병보석으로 나왔고, 불구속 입건된 사람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다닌다. 장애인 복지시설은 전액 국가 지원금으로 운영되건만, 시설장이 주인 노릇을 한다. 인권침해와 비리가 드러나도 법과 관할 당국은 이들에게 어찌나 관대한지 솜방망이 처벌 뒤 다시금 시설을 꿰찬다. 해서 “이길 수 있겠냐”고, “불이익이 두렵지 않냐”고 물었다. 근데 생뚱맞게 “행복하다”라고 답한다.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그래도 할 말 하고 사는 지금, 내가 사람 같다”며 웃으며, 운다. 말 한마디 이으려면 온몸이 요동치고 모든 기운이 소비되는데도 ‘이기기 위해’ 쉬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다.
서울시청 문은 오늘도 그들에게 열리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서울시장을 쫓아다니자 관할 경찰서는 단 한 명도 가만두지 않겠단다. 그들이 고발한 시설장에게 그들의 신원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농성 20여 일이 지났지만 찾는 언론도 드물다. 시설에서의 인신매매, 성폭력, 감금, 구타, 살인 등이 다반사인 사회에서 몇십억 훔친 비리는, ‘이 정도’의 자유 제한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시청 문은 오늘도 열리지 않아
그들은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 마음은 건네는 이의 이익 혹은 권리와 충돌할 때 쉽게 숨어버림을 삶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한 사람으로 온전히 서기를 원한다. 자유를 원하고, 권리가 존중되길 바란다. “시설에 갇혀 사육당하기 싫어. 난 개나 돼지가 아니야. 난 사람이라고. 단 한 달만이라도, 내 나이대의 사람처럼 살고 싶어. 단 하루를 살아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 그들을 편견에, 시설에 가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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