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김경욱 기자, 두 번 단속된 지하철 상인 대신 ‘다이아몬드처럼 발광하는 반도체’ 판매에 나서다</font>
▣ 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하나도 못 팔 거 같은데….”
멀리서 사진을 찍던 사진팀 선배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4월16일 오후 4시께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을 출발한 열차는 어느새 회현과 서울역을 지나 숙대입구에 도착하고 있었다.
“하나도 못 팔 거 같은데…”
지하철에서 플래시를 파는 김민배(58·가명)씨는 이날 두 번 단속됐다. 일진이 사납다며 일찍 접고 들어가겠다는 그에게 “내가 한번 해보겠다”고 말을 꺼낸 게 화근이었다. 네 정거장이 지나도록 인사말 하나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보다 못한 김씨가 나섰다. “내려갈 때(하행)는 제가 팔 테니까, 잘 봐뒀다가 올라올 때(상행) 한번 해봐요.” 경력 10년의 ‘대가’답게 재빨리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지하철을 타면 저희 같은 장사꾼들 때문에 불편하시죠?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 힘겨운 시절을 견뎌내면서 끝까지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 아비의 모습이라고 이해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번 상품은….” 겉으론 단순하게 들리는 설명이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전략과 절차가 있었다.
김씨의 상품 설명은 앞서의 말처럼 먼저 승객에 대한 양해의 말로 시작됐다. 그 뒤 제품에 대한 상세 설명으로 이어졌다. 제품 설명도 요령이 있었다. 단순하게 “LED 전구”라는 식이 아니라 “화합물반도체의 특성을 이용한 발광다이오드 전구”라는 식이었다. 제품 설명 뒤에는 가격을 이야기했다. “부담 없는 가격. 1천원짜리 한 장만 받습니다.” 설명을 하면서도 지하철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승객이 제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동작까지 세세하게 관찰하며 나름대로 분석을 하고 있는데 지하철은 벌써 ‘구역’의 마지막인 총신대입구역에 도착했다.
심장이 ‘콩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김씨와 함께 반대편 열차에 올랐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안녕하십니까.” 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먼저 양해를 구하는 말부터 해야 했다. “조용한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여러분께 좋은 상품 하나를 소개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후훗’ 생각 외로 시작이 좋았다.
그런데 다음 말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화합물반도체? 반도체화합물? 발광? 다이아몬드? 다이하드? 머릿속에서는 각각의 단어들이 낱개로 둥둥 떠다녔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다이아몬드처럼 발광하는 반도체입니다”라고 대충 얼버무린 뒤 나도 모르는 말을 마구 덧붙였다. “던져도 깨지지 않고 물에 넣어도 고장나지 않아요.” 멀리서 몰래 지켜보던 김씨가 고개를 숙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가 했는데…
누구 하나 눈길 주는 사람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멘트를 외우기는 역부족이니 나만의 방식으로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제품 설명에 충실해보려고 했다. 그때 주머니에 손을 넣는 50대 남성이 보였다. ‘앗싸!’ 물건을 들고 가까이 갔을 때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다음 칸으로 이동해 반복 또 반복. 이촌역을 지날 때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말을 건넸다. “얼마예요?” 아뿔싸! 너무 긴장한 탓에 그동안 가격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1천원입니다.” “하나 주세요.” 첫 물건은 이렇게 팔렸다. 한 사람이 사는 것을 보고는 건너편에 앉은 아주머니도 지갑을 열었다. ‘일타이득.’ 명동까지 오면서 판 플래시는 모두 4개. 지하철 요금 정도가 손에 떨어진다.
“많이 못 팔아서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녜요. 누군가 이렇게 관심 가지고 봐준다는 게 오히려 고맙습니다. 언제 소주 한잔해요.” 김씨와 헤어진 다음날, 세상은 4조원대의 재산을 차명으로 소유하고 1천억원대의 포탈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때문에 떠들썩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재명, 오늘 비상회의 열고 광화문으로…“당 혼란스럽지 않다”
[영상] 윤 ‘부적절 골프 의혹’ 골프장 직원 신상, 경찰 ‘영장 없이 사찰’ 논란
이준석 “대통령 당선인이 역정, 이례적”…강서·포항 공천개입 정황
‘윤 퇴진 집회’에 경찰 이례적 ‘완전진압복’…“과잉진압 준비” 비판
‘북 대남 확성기’에 아기 경기 일으키자…정부, 방음창 지원
러시아, 중국 에어쇼에서 스텔스 전투기 첫 수출 계약
체중 감량 위한 세가지 식사법…무엇을 택하겠습니까
김준수, BJ 녹취에 8억 뜯겼다…101차례 협박 이어져
일본 왕실서 남편과 ‘반전·반성’ 목소리 냈던 ‘유리코 비’ 별세
추어탕 미꾸라지, 소금 비벼 죽이지 말라…세계적 윤리학자의 당부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