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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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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위안부

등록 2008-05-02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미국인 극작가가 쓴 일본군 위안부의 삶 국내 공연…“할머니들이 고맙다고 하더군요”</font>

▣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실상이 잘 알려지도록 한 것은 뉴스나 통계자료가 아니라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이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더 알리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면 합니다.”

미국 극작가 라본느 뮬러가 위안부 문제를 다룬 희곡 (4월30일∼5월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국내 공연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역사적 아픔을 담아낸 희곡을 주로 써왔던 뮬러는 1990년대 초 일본에 체류하던 중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 여기에 시적 상상력을 더해 을 완성했다. ‘특급호텔’이라는 제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막사의 실제 이름에서 따왔다.

위안부 여성 네 명이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일본군에 유린당하고 성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네 여인의 삶을 호소력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뮬러는 미국에서도 기회가 닿는 대로 강연 등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전해왔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연극을 통해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에서 두 차례 워크숍을 열고 관객의 충격과 호응을 이끌어냈으나,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제작자들이 꺼리는 바람에 본격적으로 공연되지 못한 것이다. 서울연극제의 공식 참가작으로 올려지는 이번 공연이 의 세계 초연인 셈이다. 뮬러는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훌륭한 연출에 무척 기뻤다”고 한국 공연을 미리 본 소감을 전했다.

뮬러는 이번 방한 기간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연극화’와 관련한 세미나와 각종 강연에도 참석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도 동참했고, 지난 4월20일에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방문해 희곡의 주인공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연극 소개를 듣고 연극 전단지를 꼭 끌어안으며 이 문제를 다뤄줘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늘 생각해왔던 것을 직접 현실로 봐서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극단 초인은 공연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초청하는 한편, 로열석 수익의 50%를 나눔의 집에 기부할 예정이다.

<font color="#216B9C">△ 옥동이 군인에게 애걸한다. ”남편은 죽고 뱃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어요. 제발. 배에다 딱지를 던지더니 내게 들어온다. 서서히 시작하더니 헐떡이다 몰두한 채 깊숙이 찔러넣는다. 정상에 다다른다. 또 군인이 기다리고 있다. 좀더 가까이 항구에 닿으려고 아기가 자라는 검은 하늘 안에서 긴 코 박쥐가 되기 위해서(‘검은 하늘’은 자궁을, ‘박쥐’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font>

<font color="#216B9C">△ 연습이 끝나고 분장실에 모인 단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연출가 박정의씨. 그는 “그동안 극단 초인의 작업이 배우의 신체를 주요 표현수단으로 하는 움직임 위주의 연극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몸이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더불어 몸 자체가 보여주는 표현의 영역까지 몸을 울리는 소리의 에너지를 통해 표현했다”고 한다. 연습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5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font>

<font color="#216B9C">△ 극중 옥동(18) 역을 맡은 배우 이상희(36)씨가 수요집회에 참석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씨는 할머니들을 대신해 증언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분노하는 대사를 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져서 관객보다 더 슬퍼하거나 분노하게 돼요. 너무 처참한 일을 당했잖아요.”</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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