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1996년 12월16일 저녁, 한겨레신문사 편집국에 급하게 전 직원이 모였습니다. 경영진이 소집한 유례없는 ‘비상 경영설명회’ 자리여서인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권근술 당시 회장이 알린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최근 광고 수주량이 급감하고 있다. 광고 수주에 외부 세력이 개입하고 있다. 안기부와의 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와 명예훼손 소송을 벌이고, 안기부 예산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기획 시리즈를 내보낸 것 등이 겹치면서 안기부가 의 광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일부 기업들이 “안기부 때문에 광고를 주지 못하겠다”며 난색을 표시하고, 예정됐던 광고를 취소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외부에 널리 알려진 일은 아니었지만, 안기부의 행태에 대한 강력한 항의가 청와대 등에 전달됐고 결국 부당한 광고 개입은 중단됐습니다. 1970년대의 언론 광고탄압 사태처럼 역사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광고를 통한 언론 통제가 현재진행형이구나, 라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1월, 한겨레신문사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광고 탄압’이라는 유령이 한겨레를 어슬렁거리는 탓입니다. 어느 정도 알려졌듯이, 지난해 10월29일 이후 에선 100일 가까이 국내 최대 광고주인 삼성그룹 광고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한 것과 정확히 시기가 일치합니다. 심지어는 삼성중공업이 모든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에 게재한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의 사과 광고조차 는 ‘열외’였습니다.
물론, 삼성으로선 “광고는 광고주 마음”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불편한 진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언론을 광고를 매개체 삼아 통제하려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태껏 우리 사회는 국가권력이 언론을 직접 탄압하거나, 기업을 동원해 광고 등으로 간접 탄압하는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기업이 직접 막강한 자본력을 동원해 여론을 통제하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선 듯합니다. 대형 광고주들이 불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엔 광고를 주지 않고, 유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에만 광고를 주는 행위가 보편화한다면 언론의 감시·비판 기능은 현격히 저하될 게 뻔합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 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기업의 선진성과 상대적 경쟁력을 강조한 발언이었을 겁니다. 특히나 삼성은 ‘세계 1류’를 지향한다고 자부해왔습니다. 그런 삼성이 광고를 도구로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4류 정치에도 못 미치는 5류적 행태와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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