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에로스·임신·결혼·무한한 사랑’이란 네 가지 사랑을 털어놓은 영화 </font>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여기 사랑에 빠진 귀여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회적 통념에 따르면 그들의 사랑은 도통 귀엽기 어렵다. 장애가 있고 비혼이며 이성 간의 결합으로 맺어진 연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백할 수는 있어도 가까운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는 어렵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귀여운 사랑을 차마 숨기지 못해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사연을 말한다. 는 네 쌍의 커플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로맨틱 코미디 는 라디오 DJ에게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을 털어놓는 형식을 취한다. 영화의 제목은 곧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불임 부부와 부부가 되지 못한 남성들
는 역설적 제목이다. 영화가 다루는 사랑은 정해진 매뉴얼을 찾기 어려운 종류이기 때문이다. 비혼의 선남선녀가 만나서 운명적 사랑에 빠지고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해 옥동자를 낳고서 영원히 행복했다. 이렇게 정해진 낭만적 사랑의 각본에 그들의 사랑은 나오지 않는다. 첫 번째 사랑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남성과 그의 물리치료사인 여성 사이에서 뜨겁게 스쳐가는 사랑이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하면 사귀어야 한다는 사랑의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이 하룻밤의 열정도 아니다. 한 사람의 시선이 다른 사람의 시선마저 달구는 그런 사랑이다. 그래서 첫 번째 소제목은 ‘에로스’. 단 열정적 사랑의 공식을 선남선녀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남성과 아름다운 비장애 여성에 대입한 새로운 ‘사랑의 매뉴얼’이다.
어쨌거나 첫 번째 사랑에 낭만적 기운이 감돈다면, 두 번째 사랑인 ‘임신’엔 생활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프랑코와 마뉴엘라는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기 위해 애쓴다. 마뉴엘라는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심지어 프랑코와 함께 레스토랑에 갔다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이 남자의 정자가 적고 시원찮아서 내가 이 고생이라구요!”라고 폭발해버리는 정도다. 프랑코는 마뉴엘라의 심술을 받아주랴, 불임의 원인인 자신의 남성성을 긍정하랴, 양쪽으로 바쁘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조반니 베로네시 감독은 어쩌면 뻔한 설정에 유머의 리듬과 상황의 구체성으로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화내고 따지고 사고치고 토라지는 부부의 모습이 갈수록 귀엽다.
세 번째 소제목은 ‘결혼’. 심지어 사랑하니까 결혼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생기는 시대에 사랑하지만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결혼은 사랑의 새로운 매뉴얼로 재탄생한다. 40대 포스코는 이제는 결혼할 준비가 됐다고 느낀다. 더구나 그에겐 4년째 동거 중인 애인인 필리포도 있다. 하지만 그의 결혼은 바티칸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포스코와 필리포는 남성이기 때문이다. 사회만 문제가 아니다. “엄마 아빠처럼 결혼은 남녀가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필리포의 아버지는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족만 문제가 아니다. 필리포는 게이라는 이유로 이웃의 청년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니 ‘네 이웃의 청년을 조심하라’가 되겠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엔 행복을 향해 뛰어가는 중년 아저씨들의 뒷모습이 어여쁘다.
살기 위해 이별해도 처절하진 않게
의 압권은 마지막 에피소드 ‘무한한 사랑’이다. 사랑에 남은 최후의 국경은 어쩌면 나이다. ‘무한한 사랑’은 나이든 남성과 젊은 여성의 얘기다. 레스토랑 지배인 어네스토의 “김 빠진 샴페인 같았던 인생”에 “천사”가 찾아든다. 천사의 이름은 세실리아. 아름다운 싱글맘 세실리아는 중년을 넘어선 50대의 어네스토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느낀다. 물론 어네스토도 세실리아의 사랑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랑의 공식은 또 한 번 뒤집히는데, 이들의 관계는 나이든 남성인 어네스토가 아니라 젊은 여성인 세실리아가 주도한다. 결국에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은 가족이 아니다. 사랑은 무한한지 모르지만 육체는 유한하다. 어네스토는 살기 위해 사랑을 보낸다. 하지만 이들의 이별이 처절하진 않다.
그렇게 두 쌍의 커플은 행복했고 두 쌍의 사랑은 완료됐다. 하지만 헤어진 이들도 에선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경험한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더욱 잘하기 위한 추억처럼 느껴진다. 남유럽식 코미디라 부를 만한 풍부한 유머와 낙관이 영화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툭툭 조응을 이루는 유머를 되씹는 재미가 시종일관 영화를 감싼다. 그렇다고 가 구름 위에 떠 있는 영화도 아니다. 이탈리아 사회의 보수성을 슬쩍슬쩍 계속해서 건드린다. 이탈리아 연인들은 스페인으로 가서 동성결혼을 하고 인공수정 시술을 받는다. 같은 가톨릭 국가지만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인공수정에 대해 편견이 덜한 스페인을 보수적인 이탈리아와 슬쩍 대비해두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한결같이 좋지만, 한 명의 배우는 유난히 눈에 띈다. 을 통해 스타로 떠올랐던 모니카 벨루치가 루시아 역으로 등장해 여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번에 개봉하는 는 2007년 이탈리아에서 개봉했던 의 2편인데, 지난해 할리우드 영화들을 제치고 이탈리아 박스오피스에서 오랫동안 정상을 지켰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사랑의 찬가 는 2월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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