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하나님이 보우하사, 대한민국은 진보의 물결이 넘실대는 나라가 되었다. 보라, 저 동해물과 백두산에 넘치는 도도한 진보의 쓰나미를. 손학규의 새로운 진보냐, 유시민의 유연한 진보냐. 이제 국민은 마르고 닳도록 고민할 일만 남았다. 그렇게 12월19일의 재앙으로 세상이 뒤집힌 이후에, 대량생산의 지역주의 컨베이어 벨트는 끊어졌고 바야흐로 진보는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로 접어들었다. 너도 진보, 나도 진보,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의 진보 애호증은 반세기 묵은 고질병이지만 여전히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도저히 핏줄을 속이기 어려운 홍길동의 후예여서 보수를 보수라 부르지 못하고 보수를 진보라 불러야 하는 설움을 오늘도 즐긴다. 새로운 진보를 주창하는 분이 대표로 뽑힌 당에 “통합신당에는 진보적 가치가 숨쉴 공간이 너무나 좁다”고 일갈하며 탈당하신 유시민 의원의 신당은 얼마나 아름다운 진보정당이 될 것인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분이 앞장서 만드신 열린우리당은 어찌나 유연한 진보적 가치가 살아 숨쉬었는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이라크 파병을 완수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만든 진보의 감동은 좌우를 뛰어넘고 국경마저 초월하여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조차 최근에 떠나는 대통령을 극찬하지 않았던가. 영국 노동당의 블레어가 걸어간 제3의 길을 주창하는 손학규의 통합신당도 마찬가지다. 조속히 통합신당은 이름을 통합노동당으로 개명하라. 거꾸로 선 한국사는 그렇게 바로잡아야 한다. 하기야 이러한 신공이 그들만의 방법도 아니다. ‘미국산 별다방’도 제3세계 커피 재배 농민을 돕는다고 매장마다 도배를 하지 않는가. 그래도 정치학자 손학규, 독일 유학파 유시민, 알 만한 분들이 그러니 더 그렇다. 여러분 제발, 제3의 길이니 유연한 진보니 하지 마시고, 그냥 “신제품이란 뜻이에요”라고 해주세요.
하느님이 보우하는 한국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인이 아니라서 한국인 하느님의 보우하심을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다. 지난해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받던 그들이 불에 타서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지만 역시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지난 1월15일에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을 피하려던 재중동포가 8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숨졌고,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받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는 보호소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건강검진을 받아서 극심한 당뇨 증세가 나왔지만, 계속해서 보호소에서 ‘보호’를 받아야지 보호소 밖에서 치료를 받지는 못한다는 법무부의 응답을 들었다. 앞서 지난 연말에는 이주노조 지도부 3명이 표적단속을 당해 강제출국됐다. 몇 해 전 길에서 재중동포가 얼어죽은 사건도 있었고, 최근에도 단속을 피하려던 이주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한국의 넘치는 진보 중 어느 진보정당도 그들을 단속의 그늘에서 구해주지 못한다. 심지어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조차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부르는 과감한 발언이 나왔다.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를 어서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벌이는 단체까지 생겼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가 꽃피는 나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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