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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사설 읽지 말라

등록 2007-11-23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논리적인 글쓰기를 연습한다면서 신문 사설을 베껴쓰거나 오려붙이는 이들이 있다. 아마 중·고등학생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꽤 있을 거라고 본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즉시 중지해야 한다. 수능이 끝나면서 논술 시즌이 돌아왔는데 이런 수험생들이 있을까 걱정이다.
여러모로 보아 한국의 신문 사설은 논리적인 글쓰기의 벤치마킹 사례라고 하기 어렵다. 사설이 좋은 글인 줄 알고 베껴쓰던 버릇을 지녔던 이들이 사설이 가져다준 ‘해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배의 수고를 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한국의 신문 사설이 모범적인 글이 아닌 가장 큰 이유는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흥분한다. 논리에 기대기에 앞서 감정에 기대길 좋아한다. 논설문이 아니라 연설문에 더 가까운 경우도 있다. 자문자답형 문장도 많은데 이것은 정치인들이 대중연설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다. 감탄법, 영탄법, 반복법, 대구법 등의 수사법도 자주 등장한다. 이런 수사법들은 문학적 글쓰기에 등장하면 좋을지 몰라도 신문 사설과 같은 실용적인 글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사설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가증스럽다’ ‘뻔뻔하다’ ‘철면피 같다’ ‘파렴치하다’와 같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감정의 극치에 다다랐을 때 더는 참을 수 없어 내뱉는 말들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쓴다면 ‘다시는 보기 싫다’는 수준의 말이다. 욕에 가깝다. 이런 표현을 자주 쓰게 되면 문제나 이슈의 ‘내용’보다는 특정한 인물의 ‘인격’을 문제 삼는 버릇이 생긴다. 문제를 지적하거나 비판할 때 내용을 문제 삼기보다는 인물의 태도나 과거 행적 같은 것을 물고 늘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수구꼴통’이나 ‘빨갱이’ 같은 표현이 여전히 공론장에 등장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와 맥락이 닿아 있다. “죄가 밉지, 사람이 밉냐”는 경구는 논리적인 글을 쓸 때도 적용할 수 있다.

사설이 이렇게 수시로 감정에 기대는 근본 원인은 신문이 지나치게 정파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편향성은 특정한 정치적 의도와 목적에 휩쓸리게 하고, 같은 사안이라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보는 기준이 달라지게 만든다. 정치적 판단이 앞서고,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뒤로 밀리게 되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몇 년 전에는 비판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옹호하거나, 이전에는 문제 삼지 않더니 지금은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설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 한 명도’ ‘100%’ ‘전적으로’ ‘단언컨대’와 같은 극단적인 단정형 표현들은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오기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사안을 냉정히 살필 필요가 있는 언론인들이 자주 써서는 문제가 될 표현들이다. 사설과 같이 한 매체의 얼굴에 해당하는 글은 철저히 시치미를 떼고 써야 한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사설에는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필수적인 논증을 빠트리고 넘어가기, 하나의 사례를 놓고 전체의 양상인양 일반화하기, 전제를 빠트리고 결론만 말하기 등이 눈에 띈다. 좋은 글은 정반대다. 근거가 치밀하고 구체적이고 풍부하며 정확하면 읽는 이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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