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나는 6개월 동안의 사회부 수습기자 시절을 끝내자마자 신생 매체였던 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종합 영상전문 주간지’라는 매체 성격에 걸맞은 글쓰기를 배워야 하는 점도 힘들었지만, 원고지 10매가 넘어가는 장문의 기사를 쓴다는 건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어떤 때는 원고지 30~40매를 써야 했다. 최종 마감 전날에는 꼬박 밤을 새운 뒤에 회사 근처 목욕탕으로 직행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특히 지금 가장 기억나는 꼭지는 ‘한국의 배우’라는 시리즈 기사였다. 배우 한 명에 대한 인터뷰 기사였는데 지면으로 따지면 네 쪽 분량이었다. 네 쪽은 망망대해의 느낌을 줬다. 언제 저걸 다 채우냐는 생각뿐이었다. 게다가 말을 하는 데 서툰 배우라도 만나면 인터뷰가 끝나도 쓸 내용이 없었다. “연기는 뭐라고 생각하나요?”와 같은 질문에 “열심히 하는 성실한 배우가 되겠습니다”와 같은, 기가 막힌 대답이 되돌아오는 때도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나의 처방은 ‘다양한 자료 읽기’였다. 인터뷰이가 다른 매체와 했던 인터뷰 자료를 미리 읽었다. 검색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모았다. 많을 때는 A4용지로 100장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해외 매체는 영화배우와 어떻게 인터뷰하는지도 구해 읽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그 배우가 출연한 모든 영화의 비디오를 구해 감상하면서 질문거리를 생각해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나오지 않는 얘기를 쓰기 위해서였다. 배우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장면을 거론하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하면 배우도 무척 좋아했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인터뷰 기사 쓰기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고 나는 기사 쓰기에 대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취재를 많이 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교훈 말이다.
보통 기자는 취재한 결과의 30~40%도 제대로 기사에 담지 못한다. 취재한 것 가운데는 기사의 맥락과 어긋나는 내용이 많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재한 것을 다 담은 기사는 혼돈스럽거나 어수선할 가능성이 높다. 취사선택을 통해 정리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사가 좋고 나쁜 것은 보통 취재의 분량에 좌우되게 마련이다. 기사를 쓰는 솜씨의 차이를 빼놓는다면 말이다.
글도 차진 글이 좋다. 깜찍하고 알뜰하고 빈틈이 없는 글 말이다. 그러려면 글을 쓰기 전에 흡수한 자료가 많아야 한다. 인풋(input)이 많아야 아웃풋(output)이 좋아진다는 건 인생의 진리이지만,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써야 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를 읽어야 한다. 글의 힘은 가장 도움이 되는 일부분의 내용을 추려내기 위한 여분의 자료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논리적인 글을 쓸 때 사례를 들어서 논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거론하는 사례가 비슷하거나 똑같으면 글은 천편일률적이고 식상해진다. 이 순간 군계일학이 되려면 뻔한 것보다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한다. 길거리 간판, 온갖 잡동사니 글, 포장지, 제품설명서, 담벼락 낙서, 각종 정기간행물 등 생활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쇄물을 꼼꼼히 살펴보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문기사 수준의 단편적인 지식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필요하면 책이나 논문은 물론 판결문이나 결정문 같은 공식 문건도 찾아 읽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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