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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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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걸고 쓰는 글

등록 2008-03-21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나는 리영희 선생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글은 여러모로 논리적 글쓰기의 이상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감상이나 주관적 견해를 앞세우기보다는 사실에 철저히 근거해 설득하려는 점,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주도면밀하고 목적의식적인 문장 배치와 구성에 힘씀으로써 글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는 점,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읽는 이를 배려하는 점 등은 특히 배울 만하다.

그가 1990년 5월호에 쓴 ‘이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어보면 글쓰기에 대한 그의 노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그 글을 쓰기 한 해 전인 1989년 한 지방도시의 대중목욕탕에서 겪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때밀이 노동자가 그를 알아본 뒤 그의 글을 꼬박꼬박 읽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뜨거운 사랑에 부딪칠 때 나의 가슴에 맺힌 상처는 아물어간다”고 했다.

그렇지만 글을 쉽게 쓰기 위해 그가 쏟는 노력에 대해 읽는 이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원고지 9매 분량의 ‘한겨레 논단’을 쓰기 위해 그는 2주일 내내 “머리 속에 주제의 씨를 심고, 물을 주고, 발효시키고, 뜸들이고 하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며, “논단 속에 넣을 몇 줄의 자료를 찾기 위해 때로는 두툼한 미국 국회의사록 책 몇 권을 꼬박 읽는 따위의 일도 드물지 않다”고도 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쓴 글이라야 자기 이름을 걸 수 있고, 그런 글이라야 읽는 이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칼럼에서 나는 “글쓰기가 융성하려면 문자생활이 사회의 주류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되어야 하고 신뢰받는 표현방식이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가장 많이 쓰는 글이 인터넷에서의 한 줄짜리 댓글인 사회라면 글쓰기는 문화로 자리잡기 힘들다.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는 글쓰기가 전체 사회에 문화로 녹아들려면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부터 이름을 내걸고 글을 써야 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온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여성·소수자·교육 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그가 강한 면모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는 책을 썼기 때문이다. 그의 자서전 를 보면 퍼스트 레이디로서 바쁜 생활을 하면서 그 책을 완성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가 곳곳에 잘 드러나 있다. 오바마는 어떤가.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다는 자서전 과 정치적 비전을 담은 이라는 책을 쓰지 않았다면 그의 돌풍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총선 후보들의 책이 쏟아져나왔다. 오죽하면 지난 1월을 ‘정치인 출판의 달’이라고 했을까. 책 내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돈 쓰는 데에만 신경썼던 이전 시대보다는 분명 진일보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정작 이름을 걸어도 될 만한, 책은 드물다는 평이다. “의뢰받은 정치인과 2박3일 동안 인터뷰하고 원고를 썼다”는 대필 작가들의 증언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좀더 성숙해질 게 분명하다.

*‘김창석의 오마이논술’은 이번 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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