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언론에서 법조기자는 검찰·법원·변호사 업계를 책임진다. 처음 법조 출입처에 나가는 신참 기자는 보통 법원에 배속된다. 법원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이 공식적으로 처리되는 마지막 장소다. 그런데 그 과정이 모두 서류를 통해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재판 절차는 서류로 갈음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취재는 ‘서류와의 싸움’이다. 오전 몇 시에는 어디에 가서 무슨 문서를 봐야 하고, 몇 시에는 어디로 옮겨 무슨 문서를 봐야 하는 식이다. 재미가 없어서 막내 기자들을 법원으로 보내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사법 시스템의 종착지에서 ‘굴러봐야’ 그 이전 과정을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쓰기 칼럼에서 법원의 문서 얘기를 하는 것은, 순전히 판사들이 쓰는 긴 문장 때문이다. 요즘엔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판결문의 문장은 길다. 어떤 판결문은 A4용지 한 장을 넘어가도 문장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주어가 어디에 있는지 서술어가 어디에 있는지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그런 문장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법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 한다면 판사들은 먼저 판결문의 문장 길이부터 줄일 일이다.
짧은 문장을 써야 한다는 얘기는 글쓰기에 관한 글에서 항상 등장하는 말이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들릴 때가 많다. ‘누구는 짧게 쓰는 게 좋은 줄 몰라서 못 쓰나’ 하며 어깃장을 놓고 싶어진다. 그런데 문장이 짧아야 글이 간명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문장이 길어지면 한 문장 안에 주어와 서술어가 두 개 이상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자연히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비문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문장이 길어지면 읽는 이의 이해력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다음의 문장을 읽어보자. “참여정부는 대학은 산업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대학교육이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는 재정경제부 출신의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점진적 대학 통폐합 및 축소, 전문 연구대학 육성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의해서 담보되고 있다.” 이것을 이렇게 고쳐보면 어떨까. “‘대학은 산업이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대학교육 정책의 고갱이다. 정부는 대학교육의 목표가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정경제부 출신의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여러 실천 방안도 내놓는다. 점진적인 대학 통폐합과 축소, 전문 연구대학 육성 등이 그것이다.”
한 개의 문장이 네 개의 문장으로 변했다. 긴 호흡이 짧아지니 읽는 느낌도 좋고, 이해도 쉽게 된다. 문장을 짧게 만드는 것의 요체는 문장의 물리적 길이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글의 뜻을 명확히 하는 데 있다. 긴 문장만 중간중간 끊어준다고 해서 문장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짧은 문장이 계속 연결되는 것은 어떤가. 한 신문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싱가포르는 소국이다. 면적 639㎢. 서울만 하다. 인구는 310만 명. 대구보다 많고, 부산보다 적다. 콩만 하구만~.” 처음에는 새로워 보여 주목을 끌 수도 있겠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쉽게 질릴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자신에게 딱 맞는 적당한 문장 길이를 찾는 건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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