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대학 안에서는 해마다 치러지는 논술고사를 둘러싸고 일종의 암투가 벌어진다. 권력투쟁까지는 아니지만, 영역싸움 수준은 뛰어넘는 소동이다. 그것은 논술고사의 출제와 채점에서 어느 학과, 어느 전공 과목이 주도권을 쥐느냐 하는 문제다.
시험 문제를 내본 경험이 있다는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출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교수들의 싸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한투쟁인데 서로의 전공 분야 특징을 문제 삼는 등 감정적인 양상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면서 “결국 중립적인 성격을 지니는 전공 교수들이 중재에 나서야 갈등이 해결된다”고 귀띔했다.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이들은 보통 국어 관련 전공 교수와 철학 전공 교수들이다.
“논술은 무엇보다 글쓰기가 아니냐.” 국어 관련 전공 쪽 교수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논술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문장력이나 표현력을 갖추는 것이 된다. “세상을 보는 논리와 사고력을 갖추지 못한 얄팍한 글쓰기 기술은 논술에는 무용지물 아니냐.” 철학과 교수들의 대응 논리다. 역시 맞는 말이다.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논리학 교과서부터 독파해야 한다. 철학사조를 훑는 것도 필수다.
두 가지 주장은 논술고사 출제에서부터 채점 과정까지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이들의 주장은 모두 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은 내용과 형식의 관계와 닮았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형식 자체의 변화가 내용의 질적 혁신을 이끌기도 한다. 논리적 사고력이 글의 깊이와 차별성을 결정하지만, 정교한 글쓰기 기술을 통해 사고의 정치함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사려 깊은 글쓰기’와 ‘비판적 사고’의 끊임없는 교호 작용만이 논리적인 글쓰기의 지름길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고력 또는 논리력을 기르는 공부와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런 매뉴얼을 찾기도 어렵다. 논술고사의 이해당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매뉴얼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어느 수준으로 공부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글의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적 글쓰기의 기본 원칙도 대중화할 수 있다.
논리적인 글쓰기에 필요한 최소 수준의 논리적 사고법은 굳이 논리학 교과서를 읽지 않고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에 빠지지 않고 합리적이고 균형감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귀납법과 연역법은 어떻게 다른지, 삼단논법은 어떻게 구사하는 것인지,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어떻게 제시해야 설득력이 더 높아지는지 등을 가르치면 된다.
논리적인 글쓰기에 필요한 글쓰기 기술도 국어 전공자 수준일 필요는 없다.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글이 전개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주장하는 바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 주장하는 바의 명확성을 확고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장이나 문단이 왜 전체 글을 위해 일관되게 배치되고 조직되어야 하는지 등을 실제 사례를 통해 익히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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