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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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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설계하라

등록 2007-09-21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수습기자 시절의 경험은 기자 생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육체적인 괴로움은 혹독하다. 인내심을 시험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두고두고 술 안줏거리가 된다. 상명하복식의 조직문화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수습기자 교육 방식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지만, 여러 명의 선배 기자가 한 명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해준다는 점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점 중의 장점이라 할 만하다.

저널리즘이 요구하는 글쓰기, 즉 기사쓰기는 논리적인 글쓰기와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일단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핵심을 요약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기사쓰기 훈련을 받다 보면 자신이 애초 작성한 글은 온데간데없고 전혀 다른 글이 자신의 이름을 달고 활자화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실제로 원고지 5매 분량으로 쓴 글이 1.5매로 쭈그러드는 경험을 나도 한 적이 있다. 핵심과 뼈대만 추리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글이 혼돈스럽고 군더더기가 많아지는 이유는 글을 붓 가는 대로 쓰기 때문이다. ‘붓 가는 대로’는 중·고등학교 시절 수필 쓰는 법을 배울 때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그게 맞는 말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필조차도 붓 가는 대로 썼다간 망할지 모를 일이다.

문학적 형상화 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지닌 극소수의 문장가, 문필가를 뺀 보통 사람들은 즉흥적인 글쓰기를 피해야 한다. 논리적인 글쓰기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즉흥적으로 쓴 글은 문장 사이의 연결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문단과 문단도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주장이나 견해가 럭비공처럼 일정한 방향 없이 튀기도 한다. 심지어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도 생긴다. 자신과 다른 견해나 관점과의 비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잘 쓴 논리적 글은 계획적이고, 목적의식적이며, 주도면밀하다. 글쓰기의 목적을 뚜렷이 하는 게 먼저다. 그 뒤엔 목적에 맞는 글쓰기에 쓰일 재료를 끌어모아야 한다. 무엇을 앞세우고 무엇을 강조할지, 또 무엇을 자세히 쓸지도 정해야 한다.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글은 촘촘하고 탄탄하다. 한 문장만 빠져도 엉성한 느낌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되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다. 논리적 글쓰기는 집을 짓는 일과 마찬가지여서 설계도를 그리는 게 필수다. 논리적 글쓰기의 경우 설계도에는 이런 내용이 반드시 담겨 있어야 한다. 나의 중심 생각이 글에 뚜렷이 펼쳐져 있는가, 나의 중심 생각은 글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일관돼 있는가, 나의 중심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예로 든 경험이나 사례는 적절하고 풍부한가, 그 경험이나 사례를 읽어본 사람이 나의 생각에 동의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가, 나의 중심 생각을 읽는 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방법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등이다.

설계도가 담아야 할 내용은 비슷하지만, 설계도의 형식은 글쓴이의 개성에 맡겨도 된다. 표를 그려도 좋고, 나무를 그려도 좋고, 계단을 만들어도 좋다. 다만, 글의 전체 구조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입체적인 구조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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