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 kimcs@hani.co.kr
을 보다 보면 조선시대 양반들은 글쓰기를 참으로 엄중하게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다. 상소문의 경우 자신이 쓴 글을 최고권력자인 왕이 직접 보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이들은 글의 논리 구성이나 단어 선택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첨예한 논리적 쟁투가 벌어졌을 때는 특히 그랬을 것이다. 그 싸움에서 지는 날이면, 왕한테서 “아무개를 사사(賜死)하라”는 한마디와 함께 사약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가문 전체가 사라지는 ‘멸문지화’를 겪을 수도 있었을테니까.
위험천만한 상소문을 쓰는 조선시대 양반의 심정으로 돌아가 논리적 글을 쓰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분명 쓰는 글마다 완성도 높은 훌륭한 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을 억지로 조성할 수는 없는 일. 대신 제시하는 대안은 ‘전체 문장의 해체와 재구성’이다.
요즘에는 대학입시 논술고사에서도 200~300자 정도의 요약문을 쓰게 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이런 대학들에서는 보통 짧은 글 여러 개와 긴 글 하나를 쓰도록 요구한다. 긴 글의 분량은 1천~1500자 정도가 보통이다. 간혹 2500~3천 자 이상의 분량으로 글을 쓰도록 요구하는 대학들이 있기는 하다.
문장별 해체는 문장을 하나씩 순서대로 따로 떼어내 번호를 매기면서 재나열하는 것이다. 1500자 정도의 글을 해체해보면 보통 25~30개 정도의 문장이 된다. 문장을 얼마나 길게 쓰는지는 매겨진 번호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고도 확인할 수 있다. 20개 안팎의 문장을 썼다면 무척이나 지루하고도 긴 문장을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문장 개수를 확인한 뒤에는 개별 문장의 군더더기를 순서대로 정리하는 시간이다.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올바른지, 수식어와 피수식어는 순서나 위치가 자연스러운지, 적절한 단어와 개념어가 쓰였는지를 확인하면서 개별 문장들을 다이어트하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문장을 만드는 데 꼼꼼하지 못했는지가 드러나게 된다.
그 다음에는 문단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1500자 정도 되는 논리적 글이라면 문단은 4∼6개 정도 되는 것이 보통이다. 각 문단의 문장 수도 세어보고 문단 안에서의 흐름도 본다. 문단 구성이 치밀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논리적 글의 경우 무조건 문단 초반에 문단 전체의 주제를 알 수 있는 문장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개성에 맞게 하면 될 일이다. 문단 초반에 주제문이 배치되면 글이 명확해지는 대신 궁금증이 사라지는 단점도 생긴다. 글쓰기에 대해 판에 박힌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글의 생명력을 죽이는 일이다.
문단별 다이어트가 끝나면 전체 글의 흐름과 구조적 완성도를 살피는 일을 해야 한다. 문단과 문단 사이의 유기적 연관 관계는 좋은지, 각 문단은 전체 글의 구성에 견줘 그 분량이나 배치가 적절한지 등이 이 단계에서 중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어떤 경우에는 문단의 순서를 크게 뒤흔들어야 인상적인 글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문장의 해체와 재구성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훈련법이다. 그러나 묵묵히 이 과정을 거친 이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빼어난 글을 쓰게 된다. 정나미 떨어지는 훈련 방법이지만, 글에 대한 공학적 접근이 필요한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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