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꺄악~, 내 스타일이야!” 언제였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 한 몸 날려 우리나라 경찰 간부들의 인사 적체를 한순간에 어주시던 우리의 ‘창원이 형님’께서 경찰에 붙들리셨을 때, 곁에 섰던 한 여자 후배는 그렇게 외쳤다. ‘이거 변태 아냐?’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그게 아니었다. 다음날부터 그가 입었던 유치한 느낌의 꽃무늬 티셔츠는 동대문 옷가게들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머잖아 ‘효리 쫄바지’와 함께 그해 동대문이 만들어낸 최대 히트상품이 되고 말았다. 이 나라의 부익부 빈익빈을 비웃으면서 경찰의 포위를 따돌리며 신출귀몰하던, 그러면서도 가는 곳마다 다방 아가씨들과 염문을 뿌려대던 그를 어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고통스럽게도, 그러나 확실하게 그가 나보다 더 매력적인 남자일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수년 뒤,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온 국민의 시선이 미국에서 돌아온 그 남자에게 쏠려 있다. 하얀 얼굴에 곱상한 얼굴로 살인미소를 작렬하며 검찰청사로 유유히 들어선다. “꺄악~!” 어디선가 다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꺄악~!” 비명이 들려온 곳은 따로 있었다. 김포외고에서 유출된 시험 문제지를 본 것으로 확인된 외고 합격자 54명을 불합격 처리하겠다는 교육청의 방침이 나온 그날 오후, 학교 앞에서 불안한 듯 결과를 기다리던 학부모들은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부모들은 “이미 합격증까지 줘놓고 웬 말이냐”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전교조 교직원들과 학부모단체 회원들은 “학원과 외고의 유착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경기도 교육감의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경기도 교육청은 이들이 빠진 빈자리는 재시험을 쳐서 채워넣겠다고 말했는데, 결국 책임을 지게 된 것은 어른들 시키는 대로 학교 가고, 학원 가고, 문제 풀고, 시험 본 아이들이다. 교육청 철문을 잡고 흔드는 학부모들의 오열 소리는 커져만 간다. 아~이고, 아~이고, 아~외고!
“그러니까, 자고로 떡 앞에 장사 없는 법이라니께!” 우리 동네 세탁소 박씨 아저씨가 오랜만에 열변을 토해냈다. 평온하게 이어지던 아저씨의 일상을 깨뜨린 것은 서울지검 특수부와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거친 김용철 변호사의 벼락같은 양심고백이었다. 그의 고백 이후 여권에서는 삼성 비자금을 수사하기 위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를 구체화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제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인 임기 말년의 청와대. 그들은 처음에는 “특검 수사 범위가 너무 넓다”고 했다가 이제는 뜬금없이 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과 연계해야 한다며 ‘거부권’ 행사가 필요한지 검토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그럼 도대체 삼성 떡 안 먹은 사람이 누구냔 말이냐!” 박씨 아저씨의 분노 어린 외침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고, 일상은 다시 바쁘게 돌아간다. 흡사 떡 먹은 벙어리처럼 매끈하기 이를 데 없는 저 도저한 침묵의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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