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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스타] 바나나교 출현

등록 2007-10-12 00:00 수정 2020-05-03 04:25

▣ 박상철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justin22@hani.co.kr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는 끝났지만, 온라인에서 불붙은 ‘종교’ 논쟁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블로거들은 계속해서 기성 종교를 비판하는 글과 동영상으로 불길을 키우고 있고, 몸을 사리고 성찰해야 할 종교계에서는 오히려 계속 땔감을 던져주고 있는 형편이다.

기독교에서 시작한 불길은 불교계로 옮아갔다. 신정아 사건으로 불교계의 권력투쟁과 난맥상이 드러나는 것 같더니, 얼마 전에는 선행으로 유명했던 한 스님의 부끄러운 뒷모습이 공개돼 큰 충격을 줬다.

이 스님은 독거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를 운영한다고 해서 시주를 받아, 이 돈 대부분으로 나이트클럽을 다니는 등 유흥비로 썼다. 동거하는 여자도 있었다. 여자가 “스님이 목을 죄고 머리를 당기고 심지어는 칼을 던지기도 했다”고 폭로하자, 스님은 “나는 원래 칼을 던지며 논다”라고 태연하게 받아치기도 했다.

존경받아야 할 종교인의 추한 모습이 SBS 〈긴급출동 SOS 24〉에서 공개되자 많은 누리꾼들이 충격을 받았다. “잘못된 행동으로 욕을 먹는 기독교인, 불교인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아직 예수와 석가모니의 성품을 배우질 못했으니”라는 종교인들의 언행 불일치 지적과 “우리나라 수많은 종교들이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할 말이 없어지는군요”라는 허탈이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블로거들은 매섭고 날카로운 풍자로 좀더 직설적으로 반응했다. 블로그 사이트인 이글루스에는 ‘바나나교’가 등장했다. ‘저는 바나나님을 믿습니다’(http://sino.egloos.com/3419397)라는 제목의 화제의 글이다.

‘저는 지구 궤도에 바나나가 돌고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이 글은 ‘바나나님은 관대하시지만 반바나나 세력에 대하여 언급하시기를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 썩은 과일과 함께 사후세계를 사시겠습니까?’라고 기성 종교의 선교 방식을 패러디한다. 지구 궤도 위에 바나나가 돌고 있다는 ‘합성사진’을 제시하는 이 포스트는 ‘바나나교’의 존재 증명을 기존 종교의 ‘신의 존재 증명’에 연결시킨다. ‘아무도 쉽게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바나나님이 없다고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바나나님은 존재합니다’라는 논리가 그러하다.

이 ‘황당한 글’에 누리꾼들은 요란하게 반응했다. 순식간에 7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아주 유쾌한 글입니다. 어리석은 지난날을 반성하고 오늘부터라도 바나나교로 개종하겠습니다’ ‘그럼 노란 바나나 우유와 하얀 바나나 우유 중 어느 쪽이 이단인가요?’

신흥 종교 ‘바나나교’의 탄생은 누리꾼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종교의 위상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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