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그러니까 문제는, 언젠가부터 그의 말에 감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노무현 대통령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나가 “엄청난 갈등 과제들도 다 해결했다. 얼마나 자신만만하면 기자집단하고 맞서겠느냐”고 말하셨다. 무식해서 죄송하지만, 그가 해결한 엄청난 갈등 과제들이 솔직히 뭔지 잘 모르겠다. ‘평화’를 얘기하던 평택 대추리 주민들은 군부대를 동원해 포클레인으로 내쫓으셨고, 미국과의 갈등을 우려해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셨으며, 부자들과의 갈등을 우려해 임기 중 강남 아파트 값을 평당 1200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올려놓으셨다. 대통령도 사람이신지라 싫은 것 싫다고 말하실 자유는 있다. 그러나 “특수훈련을 받은 내가 대신 아프간 인질로 잡힐 생각도 했다”는 ‘29만원’ 어르신의 말처럼 듣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말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이러다 정말 MB의 영도 아래 하늘에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 어르신!
빛에는 그림자가 있다고 했는가. 어르신이 빛이라면 그는 항상 어두움이었다. 사기 혐의로 수배 중인 어르신의 동생 전경×씨. 20년 전 일해재단 비리 사건으로 어르신의 얼굴에 똥칠을 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구권 화폐 사기범들과 어울려 ‘바람잡이’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여기서 ‘바람잡이’란 말 그대로 바람잡이인데, 전씨를 동원한 선수들이 ‘수술 대상’을 작업하는 동안 옆 자리에서 친분을 과시하며 같이 밥을 먹었다고 한다. 그는 2004년 한 건설업체 대표에게 접근해 “미화 1억달러 외자 유치를 도와주겠다”고 말한 뒤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7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고소를 당한 뒤 종적을 감춘 상태다. 너나 없이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사기치고 사는 것은 좋다 치자. 하려면 배짱 좋게 형님처럼 두목을 해야지, 쪽팔리게 ‘바람잡이’가 웬 말인가, 바람잡이가! 눈물이 앞을 가리고, 콧물이 입으로 흐를 일이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으로 어르신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모두 2205억원. 하지만 실제 추징된 돈은 그 14.2%인 313억원뿐이다. 눈물도 피도 없는 법무부는 최근 이름도 복잡한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을 고쳐 어르신을 강제노역형에 처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 법무부 왈, 현행법은 뇌물죄 등 중대 범죄 수익을 환수할 때는 몰수 또는 추징하도록 하고 있지만, 어르신같이 돈이 29만원밖에 없는 사람은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몰수가 안 될 때는 벌금형을 선고하기로 했다는데, 벌금은 못 내면 감옥에 갇혀 하루에 5만원씩 일수 찍으며 벽돌을 날라야 한다. 공무원들 말로는 지난해 추징 선고액은 24조6376억원인데, 미납률은 99.8%라고 한다. 그래 다 좋다. 아무리 어르신이 싫다고 해도 그렇지, 어르신 어깨 위에 꼭 그렇게 똥지게를 지워야 하는가.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지고, 29만원 통장이 울고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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