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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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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행복

등록 2007-09-07 00:00 수정 2020-05-03 04:25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며칠 전 지방에서 도의원을 하는 친구와 긴 시간 동안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화의 화두는 ‘행복’과 ‘대선’이었습니다. 도의회 교육복지위원회에 소속돼 의정 생활을 갓 1년 넘긴 그는, 현장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의 애환과 고민을 이런 물음으로 압축했습니다.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도 못하고, 그나마 낳은 아이는 학벌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교육의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대학을 가도 내내 취업 걱정에,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거나 비정규직이 태반인 나라에서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철학적이어서 무 자르듯 개념을 규정하기란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판단 근거가 제각각이기에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까지 나왔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행복하지 않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나름대로 행복을 객관화한 여러 지표들은 이런 현실을 쉽게 확인시켜줍니다. 한 예로 영국 싱크탱크인 신경제학재단(NEF)이 지난해 세계 178개국의 행복지수 순위를 평가한 결과, 한국은 102위에 머물렀습니다. 삶의 만족도와 평균수명, 1인당 생존에 필요한 면적과 환경 등을 종합한 지표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인 점에 비추면 참 초라한 성적표입니다.
화제는 자연스레 12월 대선으로 흘렀고,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의 불행을 행복으로 돌리는 전환점이 되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우려를 나눴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50%가 넘는 고공 지지율을 자랑하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제1 약속인 ‘경제 대통령’론이 미덥지 않습니다. 그는 “높은 성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제시한 성장의 내용과 방법으론 우리 사회의 기형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재벌편향적 성장주의는 심화하는 양극화와 고용불안 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려의 또 다른 이유는 대안의 부재입니다. 이명박 후보의 성장담론이 1960~70년대 개발지상주의 같은 낡은 패러다임이라거나 가혹한 신자유주의 노선이라는 비판은 무성하지만, 그의 대척점에 선 여러 대선 후보들은 반대로 뚜렷한 경제·사회 시스템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칠게 줄여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갈 것이냐, 아니면 다른 모델을 지향할 것이냐”라는 물음에 답할 ‘다른 모델’이 애매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어쩌면 분명한 경제·사회 모델의 부재가 큰 이유였을 겁니다.
대선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인의 승부이지만, 그 내용은 미래 청사진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이 후보의 경제관을 재벌 중심의 ‘가짜 경제’로 규정하고, 중소기업과 사람 투자에 기반한 ‘진짜 경제’를 발전 모델로 내세우며 출마를 선언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이 676호에서 해부해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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