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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넌센스] 한번 전사는 영원한 전사다

등록 2007-08-31 00:00 수정 2020-05-03 04:25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역시나, 세월은 흘러도 전사의 혈통은 속이지 못한다. 아무리 근본을 감추려 하여도 심장에 새겨진 전사의 맹세는 어쩌지 못한다.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전사 출신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이것은 특이하게도 한국어에선 형용모순이 아니다. 이렇게 민족이 못다 한 좌우 합작의 염원을 자신의 일생에서 이룩하신 오지랖 넓은 분들이 남쪽엔 흔하다)은 자신에 대한 2선 후퇴론에 맞서 “나에게 1선, 2선이란 없다. 전선에만 있었을 뿐”이라며 고이 간직해온 전선론을 밝혔다. 이렇게 남민전 노전사는 전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노선은 좌에서 우로 바뀌어도 전선론은 여전하다. 남 모르게 간직해온 전사의 기백은 오늘도 당당하여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음에도 만천하에 전선론을 고무찬양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불철주야 걱정하며 전선론을 철통같이 견지해온 전사가 강고한 전선론을 마침내 폐기하는 그날은 언제일까. 70년대 남민전, 80년대 전민련, 90년대 민중당, 2000년대 한나라당으로 강고하게 이어진 ‘이의 전선’은 언제나 끝날까. 그분의 8월 테제는 “제 전선이 마감되는 날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는 날”. 그분의 은 그날에 들을 수 있단다.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비록 왼쪽, 오른쪽으로 꼬였을지라도 그의 전선은 오직 청와대로 향한다. 한번 전사는 영원한 전사다!

전사에겐 그분이 있게 마련이다. 전사가 은혜하고, 전사를 은혜하는 그분. 사방에서 전사의 지나친 전의를 탓하지만 그분만은 전사의 용맹성을 은혜로운 말씀으로 치하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안 된다고, 너무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다 내 지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어체로 번역하면 “짐이 곧 재오다!”, 영화 제목을 빌리면 . 서울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영화 제목을 쓰자면 , 영화 대사로 말하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렇게 사람은 변해도,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단군 이래 티셔츠에 가장 많이 새겨진 문구는 당연히 ‘Be The Reds’. 아마도 다음으로 많이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는 ‘World Without Strangers’ 아닐까. 홍콩산 브랜드가 만드는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는 처음엔 거리에 이따금 보이더니 요즘엔 지하철 곳곳에서 출몰한다. ‘이방인 없는 세계’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터인데, 이렇게 착한 문구에 트집을 잡고 싶은 생각도 든다. 차라리 ‘World With Strangers’는 어떨까. 그러니까 이미 존재하는 차이에 굳이 눈감지 않는 ‘이방인과 함께하는 세계’가 낫지 않을까. 마침내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단일민족 국가는 이제 신화에는 물론 현실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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