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얼마 전 가수 김C가 방송에 나와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았다. 김C는, 무명 시절 외모로 인해 억울한 일이 많았다며 그 일화를 소개했다. 일산 집에서 홍익대로 가는 버스를 타면 자신의 옆자리는 무조건 맨 마지막으로 찼단다. 한 여성은 자신 옆의 빈자리를 두고도 그 긴 자유로를 서서 가기도 했다고. 또 가게에서 간장병을 들고 가격을 묻자, 주인이 자신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단번에 ‘비싸요’라고 말하더란다. 김C는 당시 그 원인을 정확히 꼽지는 않았는데, 나는 혹시 김C가 이국적인 외모 덕분에 ‘외국인’으로 오해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이 앉자 일어서버리는 사람
이주민들도 김C와 ‘같은 억울함’을 겪는다. 오히려 이주민들 사이에 그런 이야기는 흔하고도 흔하다. 외모상 확연히 외국인으로 보이는 이들, 특히 피부가 검은 이들은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한 친구는 비어 있는 자기 옆자리를 놔둔 채 서서 가는 여성의 구두코를 내려다보며, ‘다리 아프게 제발 길이나 꽉꽉 막혀라’고 속으로 외쳤다지 않은가. 자신이 앉자마자 옆자리에 앉았던 이가 발딱 일어나버려 자신에게서 냄새라도 나는가 싶어 안절부절했다는 친구, 길을 지날 때 맞은편에서 오던 여성이 자신을 힐끔거리며 피해가는 바람에 얼굴도 들지 못하고 움츠린 채 눈물을 떨궜다는 친구, 가게에 들어가면 주인 눈이 자기만 따라다니고 지갑 속까지 들여다보려는 통에 언짢았던 경험을 가진 친구들.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의 값을 물어보면 “그건 비싸. 저거 사가지고 가”라며 싼 물건을 들이대는 통에 비통했던 친구들. 이 친구들은 자신이 상대방이나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며 무척 우울해했다. 한마디로 ‘상처’받았다는 말이다. 친구들은 자신이 한국인과 좀 다르게 생기고, 피부가 까맣고, 없어 보이는 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조금도 주저 없이 그것을 ‘인종차별’로 규정했다.
얼마 전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합 이행보고서에 대한 심사를 벌이던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심상찮은 잔소리를 들었단다. 한국의 순수혈통주의가 인종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받은 것이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한국의 ‘순수혈통’ 개념은 일부 사람들이 ‘불순한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뜻을 포함하며, 이는 곧 특정 인종의 우월성 개념과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위원들은 또 대한민국 내에 ‘인종차별을 정의하고 인종차별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없음을 지적하며, 인종차별 금지를 조속히 제도화하라고 촉구하고, 인종차별의 부당성을 널리 교육하기 위해 별도로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 대해 “현재로는 ‘인종차별’의 정의를 헌법이나 국내법에 명시할 계획이 없으나, 현재 한국의 각종 법률에 인종을 이유로 차별하는 규정은 없으며, 인종·언어·학력·건강·연령·정치관·출신지역 등을 포함해 어떠한 기준에 의하더라도 불합리한 차별대우는 할 수 없다는 게 한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인종차별’ 없는 나라?
이미 10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이 한국 땅에 함께 살고 있고, 앞으로는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기도 하다. 더 미루지 말고 ‘단일민족’ 염불을 포기하고, 인종차별 금지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정부 주장대로 우리 법률에 ‘인종을 차별하는’ 내용은 없겠으나, 실질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인종차별을 다룰 근거 또한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물론 인종차별 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법이 우리네 가슴속에 들어 있는 야릇한 ‘거부감’까지 참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법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무명의 김C 옆자리를 비워둘 것이며, 이주민을 힐끔거리며 피해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슴을 바꾸는 것은 규정하고 단죄하는 법이 아니라, 김C와 이주민이 겪은 상처를 살피고 배려하려는 따스한 분위기일 테니까. 그러니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인종차별금지법’과 함께 ‘인종차별의 부당함에 대한 교육’을 특별히 따로 준비하라고 주문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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