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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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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워> 유감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이럴 땐 참 미련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해야 본전이고 삐끗하면 수렁인데, 굳이 얘기를 꺼내게 되니 말입니다. ‘진실은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라는 핑계에라도 기대야 할 듯합니다.
영화 를 봤습니다. 정확하게는 보게 됐습니다. 그다지 관심 가는 영화는 아니었는데 영화 바깥의 사회적 공방, 이른바 ‘디 워 현상’이 영화관으로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솔직히 그럭저럭이었습니다. 대체로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라는 이분법적 영화관을 가진 제게 어느 한쪽으로의 쏠림은 없었습니다. 영화의 컴퓨터 그래픽(CG)은 좀 요란했지만 스케일이 컸고 힘차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맥락이 끊기고 배우들의 연기가 어설픈 대목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공상과학(SF) 영화를 잘 모르는 제 눈높이에서의 평가입니다.
그렇지만 영화 평론가나 영화 기자 등 ‘전문가 집단’의 시선은 다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장면장면의 인과관계를 결정하는 플롯의 정교함이나 디테일의 정도, 기존 한국 영화 및 해외 영화와의 CG 수준 비교 등 더 정치한 잣대들을 개입시켜 영화의 완성도를 따지겠지요. 그 결과로 와 심형래 감독에 비교적 인색한 평론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저런 평론이, 영화의 흥행이나 대중의 선호 여부와 일정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전문가 그룹이 호평한 영화가 꼭 흥행에 성공하란 법은 없으며, 반대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는 게 좋은 영화의 보증수표도 아닙니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로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은 고작 14만 관객 동원에 그쳤고,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에 힘입은 도 다해서 170만 명가량을 동원했습니다. 반면에 는 개봉 2주도 지나지 않아 거침없이 500만 명 수준입니다. 전문가 집단의 평가와 대중의 선택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현상, 그것은 대중의 관점에서 ‘유쾌한 반란’이자, 두 집단 사이에 ‘건강한 긴장관계’가 존재한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면.
문제는 를 놓고 건강한 긴장관계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데 있습니다. 를 옹호하는 대중들이 인터넷에서 보여주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공격은 상호 존중과 바람직한 의사소통 방식을 넘어서는 양상입니다. 전문가 집단을 불신하고, 그들에게 비판적 의견의 ‘침묵’을 요구하는(심지어는 강요하는) 위험성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어떤 영역에서든 전문가 집단만의 독점적이고 권위 있는 해석은 존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무수한 정보의 유통은 그 해석의 양과 질에서 전문가라도 손색이 없는 대중을 낳고 있습니다. 대중은 힘이 세졌고, 그에 걸맞게 더 큰 책임의식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디 워 현상’은 대중과 전문가 집단의 바람직한 관계맺기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숙제로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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