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비행기 내 휴대 물품이 심하게 제한되면서, 가방 깊숙이 숨겨두었던 고추장 단지를 빼앗기고 비행기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김치 없는 외국 땅에서 입에 안 맞는 음식을 먹으려면 고추장이라도 사수해야 하는데, 그걸 못 가지고 가다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외국 땅에서는 얼마나들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지, 고추장 광고에서까지 해외여행을 간 한국인이 느끼한 음식을 못 견뎌 오매불망 고추장을 그리는 모습이 나온다. 한국인들의 한국 음식 사랑이 이리도 깊으니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도 극진하여 심하게 ‘오버’하는 이들도 있어 소개하니, 우스갯소리로 들어보시라.
김치 애호가 김 사장의 해외 나들이

김 사장은 플라스틱 쟁반을 생산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평범한 한국인이다. 여기서 ‘평범’이란 자기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세계 표준으로 알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집안에서는 ‘가장’이요, 회사에서는 ‘사장’인 50대 남성의 평범을 뜻한다. 하여간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는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토종 한국인으로, 얼마 전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고작 일주일간의 여행이지만 그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것은 바로 ‘김치도 없이 이상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걱정이 노심초사 깊었던 탓인데, 마침내 고추장 단지를 가방에 모셔가는 것으로 해결책을 마련했다. 어차피 도착한 뒤에나 필요할 테니 화물에 넣으라는 마나님의 성화를 무릅쓰고 고추장을 휴대가방에 넣었던 김 사장은, 아뿔싸, 비행기를 타기 직전 고추장 단지를 꺼내놓고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김 사장은 괴롭기 짝이 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기운이 없어 구경이고 뭐고 다 싫고 공항에 두고 간 고추장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더라는 것이다. 허풍이 센 김 사장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직원들을 불러모아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던 모험담과 신세한탄을 입이 아프도록 늘어놓았다.
남들은 하하거리며 웃고 듣는 그 모험담을 입을 삐죽이며 듣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파키스탄 출신인 라자였다. 한국 생활 3년차인 라자에게는 아픈 상처가 있다. 동료 두 명과 함께 한국에 온 그는 김 사장네 회사에서 일하면서 ‘음식’ 때문에 온갖 고난을 겪었던 것이다. 처음 외국인과 일하게 된 김 사장은 그들의 사정을 배려하지 못하고, 한국에 왔으면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장은 김치 앞에서 코를 싸쥐거나 음식이 맞지 않아 설사를 줄줄이 해대고, 돼지고기와 술을 안 먹는 노동자들이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김 사장은 주방 한구석에서 따로 음식을 해먹겠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도 거절했다. 기름 냄새며 특이한 양념 냄새도 싫고, 또 식재료를 따로 사주려면 돈도 많이 든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라자와 동료들이 한국 음식에 적응하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련만 그 또한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허기져 기운이 없던 동료들은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석 달 가까이 구박만 받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을 떠났다. 그나마 ‘한국 음식’을 견딘 라자만 홀로 남아 지금까지 외롭게 버티고 있다. 김 사장은 가끔 그 동료들을 ‘씹으며’ 김치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니 김 사장의 ‘고추장 모험담’이 라자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음식 때문에 고난 겪는 이주노동자들
그렇다고 해서 김 사장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런 일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음식 격돌’로 인해 빚는 소동을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음식 냄새 때문에 회사 쪽과 싸우거나 주방에서 밀려나간 이주노동자들은 취사 시설도 없는 바깥에서 ‘부르스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월세방 주인들은 향신료와 기름 냄새가 싫다며 외국인에게는 방을 안 주겠단다. 자기 음식을 먹겠다고 떼쓰는 이주노동자는 비자 박탈로 응징하고, 한국 반찬을 밀어내는 외국인 며느리에게는 지청구를 날린다. 그러다 보니 모두에게 평등하게 존중돼야 할 ‘음식 주권’ 앞에 김치와 고추장은 어느새 폭력이다. 이처럼 음식이 폭력으로 둔갑하는 순간을 당신은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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