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우리 동네에 사는 정수씨는 베트남 출신 아내와 살고 있다. 2년 전, 농촌 총각이었던 정수씨는 지자체가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작전’을 실시할 때, 그 작전에 참여해 결혼하게 되었다. 정수씨는 결혼 뒤 고향을 떠났다. 결혼할 당시에는 어머니가 계셔서 도움을 받았지만 돌아가신 뒤에는 자신이 가장이 되었는데, 고향에는 도와줄 사람도 수입도 없어 일자리가 많다는 도시로 왔다. 정수씨는 정신지체 3급 장애가 있다.
지자체 앞다퉈 광내기
요즘 지자체마다 나서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그 작전은 지자체가 맞선 비용을 지원해 농촌 총각과 외국 여성의 만남과 결혼을 주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자체들이 앞다퉈 작전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서로 실적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살짝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떤 지자체는 실적을 화려하게 장식하려고 억지로 ‘합동결혼식’을 추진해 광을 내기도 하니 말이다. 농촌 총각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결혼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들은 서로 행복 추구를 배려하고 격려하며 정책적 뒷받침으로 그것을 현실화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작전’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적 경쟁 와중에 농촌 총각과 외국인 신부들이 오히려 정책과 실적의 도구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다른 국제결혼 희망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수씨도, 떼로 몰려 선을 보고 허겁지겁 결정해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가족이 되었으니, 그 뒤로 살아내야 하는 일상은 고통에 가까웠다. 부부지간은 그럭저럭 좋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불화가 커 실질적인 ‘가족’이 되기엔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주로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거의 모든 다문화 가정이 겪고 있는 일인데도, 딱히 해결책도 찾기 어렵고 사회적 관심도 적은 편이다.
이 가족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고부간 갈등이 사그라졌지만 아기가 생기면서 새로운 어려움을 맞았다. 더욱 깊어진 생활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육아 방법을 몰라 쩔쩔매게 된 것이다. 정수씨네 부부는 아기 예방주사는커녕 분유나 기저귀도 제대로 못 챙겼다. 물론 그것을 구입할 경제적 능력도 부족했지만 적절히 사용할 방법 또한 몰랐던 것이다. 분명 이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있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물론 정수씨가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결혼이주 여성들이 정보에 어둡고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 큰 곤란을 겪는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동화책에서처럼,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결혼만 하고 나면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결혼식 이후에도 두 사람은 또 얼마나 긴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우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한국 문화와 베트남 문화가 서로 다른 데서 오는 갈등을 견디고 극복해야 하고, 온갖 정보와 지식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출산과 육아, 교육을 해결해야 한다. 아내는 ‘한국에서 사는 방법’을 몰라 고통스럽고, 그 모든 일을 떠맡아야 할 남편은 준비가 덜 되어 있다.
결혼식을 끝으로 종료되는 ‘작전’
이처럼 ‘작전’을 결혼식을 끝으로 종료해버리면 그 뒤로 벌어지는 일은 온전히 개인이 떠맡아야 한다. 외국인 여성을 모셔와 농촌 총각 문제를 해결하고, 보너스로 출산율을 높이게 된 것만 기뻐할 일이 아니다. ‘작전’을 수정해 가족 간 소통과 화합, 임신과 출산, 육아와 교육까지도 모두 염두에 두어 온전한 ‘가족’이 될 때까지 오래도록 관심을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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