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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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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경계인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도대체 한국인은 어디까지야?”
조승희씨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뒤 편집회의에서 누군가 불쑥 던진 한마디입니다. 조씨 사건을 놓고 한국 사회가 ‘오버’ 대응하는 게 뭔가 짜증스럽고, 한국 사회의 이런 대응이 혹시 ‘천박한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감돌던 분위기였습니다. 이내 봇물 터지듯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정말 조승희는 한국인이야, 한국인의 얼굴을 한 미국인이야?” “대니얼 헤니에게 열광하는 건 한국인이기 때문인가? 하인스 워드는?” “귀화한 동남아 출신 노동자는 법적으로만 한국인이야, 진짜 한국인이야?”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누구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던 단어를 정의하기가 힘들었던 탓입니다. 회의의 결론은 하나, 이 복잡한 세계화 시대, 다민족 시대에 ‘한국인’을 화두로 던져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말자는 전제 아래서.
은 다양한 ‘경계인’들의 생각을 추적했습니다. 미국인으로 확고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국인의 정체성도 뚜렷하지 않았을 조승희씨의 경계인 처지가 비극의 한 출발점이었다고 판단한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과 오클랜드, 캐나다 토론토,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그리고 한반도의 남쪽에서 생활하는 이민 1세와 1.5세, 2세들, 재일·재중 동포들 그리고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들이 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줬습니다.
경계인은 문화를 달리하는 복수의 집단(또는 사회)에 속해 이질적인 두 가지 이상의 문화와 집단생활의 영향을 동시에 받지만,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소속되지 못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마음속에 복수의 가치나 규범이 존재하고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약해, 동요하기 쉽고 일관성이 부족하지요. 종종 주위의 경계심이나 적대감 때문에 불안과 고립감에 시달리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변적 자기 체험은 역설적으로 기존 문화 속에서 생기기 어려운 독자적인 가치관과 감수성을 부추겨 새로운 통찰력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등으로 유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이런 경계인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대계 독일 작가인 그는 생애 대부분을 프라하에서 독신으로 지냈는데, 체코와 독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또 아버지와도 겉도는 존재였습니다. 이런 경계적 위치가 소외와 이중의식이라는 작품 주제의 뿌리를 형성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우리의 경계인들이 말하는 ‘한국인’에 귀기울여주십시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한국인에 대한 단상들이 전해질 겁니다. 그러곤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는 왜 한국인에 집착하는가’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조승희 사건에 갇힌 우리를 스스로 자유롭게 하는 첫걸음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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