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주 에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빠와 함께온 그는, 이제 고3이 된 여학생이었습니다.
한눈에도 맑음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아이는 부끄럽게 악수를 나누며 “저 전에 통화를 한 적이 있어요”라고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어 누구였더라?” 잠시 당황해하는 제게 아이는 “만리재에 나온 연락처를 보고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던…”이라며 기억을 되살려줬습니다. 그제야 맨 처음 썼던 ‘만리재에서’에서 늘 독자와 대화하겠다고 다짐하며 적었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준 여러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정작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습니다. 워낙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적고 서먹했던 탓이겠지요. 아이는 욕심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 때론 우울증을 앓는다면서도, 기자가 되기 위해 대학 국문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했습니다. 저는 다양한 책을 읽고, 생각을 글로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겠다는 ‘상투적인’ 조언을 했습니다.
아이가 돌아가고 난 뒤 ‘좀더 잘 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곤 한참 동안 ‘소통’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을 징검다리 삼아 손을 내민 아이는, 제게 아니 세상에 묻고픈 게 많았을 겁니다. 하고픈 말도 많았겠지요. 입시의 중압감이나 친구 관계의 어려움, 혹은 이성 문제 등등…. 마주 잡은 제 손길에서 아이는 얼마만큼의 따뜻함을 느꼈을까요?
누구든 크고 작은 고민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개인주의화와 경쟁이 한층 격해진 우리 사회에선 그 정도가 훨씬 심합니다. 지난해 12월 〈AP통신〉과 시장조사기관인 입소스가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멕시코, 스페인 등 10개국에서 성인 1천 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응답자의 81%가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습니다. 10개국 가운데 스트레스 호소 응답률 1위입니다.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을 길은 대화와 소통뿐입니다. 나의 내부,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경계를 무너야 합니다. 올해 일흔넷인 고은 시인은 3월7일 서울대에서 ‘우리들의 안과 밖’을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5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손자·손녀뻘 학생들에게 “21세기는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해야 하는 시대다. 하나의 존재로 살지 말고 세상과 소통하는 존재로 살기 바란다. 친구가 되려고 강의실을 찾았다”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마음 편하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존재, 누군가에게 마음 편한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될 순 없을까요?
참, 이번호를 넘기다 보면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는 말이 적잖이 눈에 띌 겁니다. 창간 13돌을 기념하는 다음 652호부터 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소중한 글을 써주신 필자들께 감사드리며, 새로운 필자와 코너들이 독자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소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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