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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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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보수주의

등록 2007-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어제 참 오랜만에 ‘진보’ 교수들과 개강 술 같은 걸 마시면서, 정규 교수직 임금을 10%만 깎아도 비정규 교수직 임금은 2배가 되는데 그런 운동을 하자고 했더니 모두 웃었다. 교수 임금을 반으로 깎아 정규직 수만큼 비정규직을 고용하자고 한 제안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것인데도 ‘진보’ 정규 교수는 물론 비정규 교수직마저도 냉소한다. 1주당 책임수업 시간을 반으로 줄여 노동량을 두 배 넓게 분배하고, 비정규 교수직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확보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해도 묵묵부답이다. 그래야 최소한의 연구와 강의가 가능하고, 대학인이 최소한의 자유와 존엄이라도 누릴 수 있으며, 조금이라도 대학다워진다고 해도 메아리가 없다. 그야말로 대학과 사회를 ‘보’호하고 ‘수’호하는 ‘보수적’ 견해여서인가?

비정규직 위에 군림하는 교수들

화제가 교수들 논문 표절로 옮아가서 나에게 저작권에 대해 묻기에 ‘카피레프트’(copyleft)라고 하자 모두 다시 웃었다. 가령 몇 년 전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마라’는 나의 책 제목을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고 바꾸어 사용한 어느 탤런트가 나에게 사과 전화를 했을 때도 단 한마디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의 글 전체나 일부를 베껴도 내 재산을 훔쳤다고 시비하기는커녕 내 재산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는 진보도 사회주의자도 아니지만 생산재의 분배라는 차원에서 저작권 해제를 주장하는데 사실 이것도 옛날 생각이니 보수다. 반면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저작권을 앞세워 원고료나 연구비를 챙기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는 것이 진보다.

수많은 비정규 빈민 위에 군림하는 소수 정규 교수들은 연구비 경쟁이나 학회 권력 또는 실제 권력의 쟁탈을 통해 더욱 가파른 계급을 형성해 극소수 엘리트로 등극한다. 최근 표절 사건의 당사자들은 그런 경쟁과 쟁탈에 탁월한 사람들이지만, 그런 경쟁 체제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았다. 그런 경쟁과 쟁탈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것에 문제가 많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도 모두들 연구비 따먹기에 환장인 것이 오늘의 대학이다. 심지어 연구비는 개인 돈이 아닌데도 그렇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체질은 철두철미 자본주의, 이기주의, 신자유주의인데도 머리만 사회주의, 공생주의인 사람이 너무나 많고, 특히 대학이나 예술 쪽이 그렇다. 가난한 학생이나 학자, 그리고 예술가를 정규 교수가 아니면 다른 누가 돕겠는가? 그나마 월급이라도 받는 이들이 그들을 도와야 하지 않는가? 머리야 어떻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대학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도 나는 보수다. 이를 위해 교수노조 대신 연구비거부연대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특히 탁월한 사회주의 진보들이 앞장서서 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고 더욱 어려운 것은 생산재의 분배가 아니라 노동과 소득의 분배이다. 외국 대학에 비할 것도 없이 우리 대학의 교수 수는 끔찍할 정도로 적은데도 대부분의 교수들은 교수를 뽑는 데 지극히 소극적이다. 임용 후보자가 결정돼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뽑지 못하게 만드는 교수들도 많다. 교수로서 담당해야 할 책임 시수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는커녕 책임 시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담당해 초과수당으로 큰돈을 버는 교수들도 많다. 성찰적인 강의 대신 취업 관련 학과목만 늘어 대학이 완전히 취업학원이 된 마당에 그들은 명강을 하는 유명 교수이고 현실 참여와 연구비 수혜도 최고다.

그들이 자가용을 타고 사라진 뒤…

교내 골프장 설치에 반대하고, 교수들만 교내에 주차하는 것에도 반대하면서 학생이나 교수 모두 주차를 금지하자고 했더니 교수들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반대한다. 공생을 위해 대학에서는 자가용이나 휴대전화를 쓰지 말자고 하면 교수는 물론 학생들도 컴맹인 나를 시대착오적 골통 ‘보수’라고 비웃는다. 술자리에 있던 ‘진보’ 교수들이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받더니 결국은 자가용을 타고서 모두 사라진 뒤, 휴대전화도 자가용도 없어 마지막까지 자리를 ‘보’호하고 ‘수’호한 뒤 술값을 내고 나왔을 때 비로소 공생을 느꼈다. 아, 나의 초라하고 시시하며 덧없는 보수적 공생주의여!

* 박홍규 교수의 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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