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페인트[peint] 명사. 외래어.
보호하거나 미화할 목적으로 물체에 바르는 물질. 초보자는 붓으로, 숙련자는 롤러로 칠한다. ‘페인트’의 번역어는 ‘칠’인데, 현재 페인트든 칠이든 그 행위는 ‘페인트 칠한다’로 서로 어울려 쓰인다. 이 행위는 새로운 물질이 밑의 물질을 보이지 않게 얼마나 완벽하게 가리느냐에서 솜씨가 드러난다. 페인트칠의 속어인 ‘뼁끼칠’은 ‘거짓말’과 동의어다. 하나 완벽한 ‘뼁끼칠’은 없는 법, 뭐니 해도 가장 큰 적은 시간이다. 세월이 흐르면 얇게 바른 뼁끼는 누추해지나 가끔 예술적 경지에 이르기도 하는 반면 두꺼운 뼁끼는 보기 싫게 모습을 드러낸다.

“어디서 지금 뼁끼 치고 있냐”는 말은 상황 여하에 따라 “변기통을 어디서 씻고 있냐”는 뜻으로도 알아듣는다. 변기통 옆에서 잠을 자는 ‘뼁끼’는 감방에서 가장 서열 낮은 재소자다. 페인트=뼁끼=변기통, 페인트=변기통. 페인트의 놀라운 ‘변신 능력’을 볼 수 있는 사례다.
오노가 보여준 놀라운 연기력으로 유명한 일명 할리우드 액션도 (입술 적시는) ‘페인트’(feint)다. 페인트는 운동경기에서 상대 경기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기 위한 ‘속임수’ 동작이다. 이영표의 트레이드마크인 ‘헛다리 짚기’ 기술은 어디로 갈지 교묘하게 속이는 숙련된 페인트 모션이다.
중국 윈난성 쿤밍시 푸민현이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뼁끼칠’을 했다. 채석장으로 쓰여서 황량하게 속이 드러난 라오서우산에 (한국돈으로) 560만원을 들여 녹색 페인트를 칠했다. 나무 심는 것보다도 많은 돈을 들인 이 ‘묘수’는 당위원회 건물의 준공을 앞두고 이 건물의 전망을 걱정해 ‘급한 마음’에 짜낸 것이라고 한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길거리에 못 볼 게 있으면 신문지로 덮어주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신문지만으로 못 볼 게 없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페인트만으로 세상을 덮어 아름다워지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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