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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언니

등록 2007-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 권김현영 동덕여대 강사

‘새언니’는 나보다 2살 연하다. 나는 정말 그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실패했다. 내 입에서는 오빠의 아내라는 의미를 가진 ‘새언니’라는 호칭이 쉽게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갈등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능한 한 얼굴을 마주치지 않거나 만나도 어색하게 지내고 있다. 나는 오빠가 집안일은 잘하는지 슬쩍 물어보지만, 오빠의 허물에 대해서 ‘새언니’가 나에게 마음 편히 얘기할 리 없으므로, 이 시도 역시 실패했다.

누나와 오빠의 차이

호칭은 계급과 성별, 나이에 따른 위계를 표상한다. 존댓말이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는 상대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지 결정하는 데 호칭이 절대적이다. 주민등록증을 내놓고 나이와 학번, 혹은 기수에 따른 호칭이 정리된 뒤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결정했다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흔한 에피소드이다.

대개 남성들은 “오빠”라고 불리면 좋아하지만, 여성들은 남자들이 “누나”라고 부르면 좋기도 하고, 나이 많아 보여서 기쁘지 않기도 하다. 오빠는 (아이) 아빠가 되지만, 누나는 (아이) 엄마가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 누나라고 안 부를게”라는 남자 후배의 선언은 곧 사랑 고백이고, “이제부터 오빠라고 안 부를게”라는 여자 후배의 선언은 커뮤니티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대개 아저씨나 아줌마로 불리는 게 기분 나쁜 건, 상대방에게 전혀 이성애의 대상으로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연애 가능한 나이를 20대를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생기는 고령자 차별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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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오빠와 누나라는 호칭을 취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애 코드들은 성별 권력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오빠’와 ‘아빠’가 친족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를 지칭하는 호칭이 된 것처럼, 호칭은 부르고 불려지는 대상의 욕망에 따라 의미가 변화한다.

최근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여성들 간의 호칭 바꾸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며느리’의 어원인 ‘며늘’이란 말은 기생(寄生)한다는 뜻이며, ‘오라비의 계집’이라는 뜻의 ‘올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들 간의 관계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관계로서만 의미를 가졌는데, 이런 문화를 바꾸어보자는 의도이다.

‘언니’라고만 부르는 건 어때요

내가 새언니를 새언니라 부르지 않는 건, 내가 나이가 더 많아서가 아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위아래로 10살까지 모두 별명을 부르거나, 말을 놓는다. 이는 나이에 따른 권위주의에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 간의 작은 실천이었다. 물론 나 역시 완전히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라서 8살 어린 친구가 나에게 “야”라고 했을 때는 순간 마음이 얼어붙은 적도 있다. 반말하기는 상당히 부담되는 실천이었기 때문에, 최근에는 나이에 관계없이 ‘언니’라는 호칭을 뒤에 붙여 부르고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여성주의 사이트의 이름도 ‘언니네’고, 일상적으로도 ‘언니’라는 호칭은 꽤 인기를 얻고 있다. 레이싱걸, 된장녀 등 여자들을 부르는 남자들의 호명 질서에서 ‘언니’라는 호칭은 여자들이 여자들을 부르는 호명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언니들 속에서 ‘새언니’라는 호칭만큼은 입에 붙기가 영 어색하고 껄끄럽다. 나는 ‘아가씨’라고 불리면서 아직 시집가지 않은 여자로서만 내가 호명되고, 나의 역사와 경험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오빠의 아내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새언니’라는 호칭이 불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서로 “언니”라고 부르자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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