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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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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벌’의 새로운 뜻

등록 2006-12-08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제겐 ‘의원 심상정’보다 ‘투사 심상정’으로 더 기억됩니다. 의정활동이 주목을 받지 못했거나, 기대에 못 미쳐서가 전혀 아닙니다. 한국 노동운동사의 한 분수령이었던 1985년 구로동맹파업에서 시작해 20년 가까이 그가 노동과 자본 사이의 투쟁에서 최전선에 섰던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일 겁니다.
무대를 국회로 옮겨 3년째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일해온 심 의원은 11월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관료 집단은 이미 정치권 위에 군림할 만큼 거대 권력으로 성장했습니다. 경제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거대한 관벌(官閥)을 해체하는 작업부터 선행돼야 합니다.”

그는 ‘관벌’의 상징으로 ‘모피아’(MOFIA·옛 재무부를 뜻하는 영문 명칭인 MOF와 마피아를 합성한 말)를 지목했습니다. 모피아 출신들이 경제정책 결정에서부터 실무 라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요직을 장악하고 있고, 경제권력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심 의원의 지적에서 하나의 의문을 떠올려봅니다. 자본과의 싸움에 충실해온 그가 왜 경제개혁의 우선 대상으로 관료집단을 지목했을까요?

그 답은 올 한 해 경제개혁의 화두였던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금산법)이나 공정거래법 개정 작업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총수 1인이나 총수 일가의 소유·지배 구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이들 법안을 놓고, 시민사회 진영과 일부 정치권은 근본적인 개정을 촉구했습니다. 이에 맞서 재벌은 관료집단과 공동의 대응전선을 형성한 듯한 모양새입니다. 재벌이라는 목표물과 정작 맞서기도 전에 관료집단의 벽에 부닥쳐 법안 개정은 알맹이가 빠지고 허우적거립니다.

재벌과 관료집단과의 관계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70~80년대는 물론이고 90년대 중반까지도 ‘관치’(官治)라고 불린 관료 우위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관료와 재벌의 ‘일체화’ 양상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좀더 노골적으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힘이 커질 대로 커진 재벌에 관료사회가 내화하고 있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재벌의 위력은 대표격인 삼성그룹 하나만 봐도 손쉽게 확인됩니다. 삼성의 한 해 수출액은 한국 총수출액의 20%가량이나 됩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사익(私益)과 공익(公益)의 충돌은 불가피합니다. 공적 영역으로 구분되는 관료사회가 사익 추구가 목표인 재벌과 맞서는 것은 둘째치고 한 몸이 된다면, 그 사회의 공적 가치를 실현하기는 힘들어집니다. 더구나 정치권력이 관료집단을 장악하기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관벌은 사전적으론 ‘관료와 문벌’을 뜻합니다. 하지만 재벌과 관료집단이 결합한 ‘관료+재벌’ 체제라는 다른 해석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은 이 새로운 ‘관벌’의 시대를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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