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 영아살해 사건 맡았던 천현길 서울 방배서 강력팀장…“남편 출국금지시켰다면 문제 됐을 것…일찌감치 결과는 확신”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천현길(33) 서울 방배경찰서 강력팀장은 지난 7월23일 이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경찰이었다. 희대의 엽기 사건인 서울 ‘서래마을 영아살해 사건’의 수사책임자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발견된 2명의 아이에 더해 프랑스에서의 수사 과정에서 한 명이 더 숨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에 대한 관심은 한국과 프랑스 양쪽에서 여전하다. 천 경감은 경찰대학을 졸업한 뒤 주로 강력사건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해왔다.
‘백인 소녀’까지 등장시킨 언론 경쟁
이번 사건에 대한 프랑스 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흥미롭다. 10월17일치 기사다. “최근 몇 달 동안 우리가 한국을 깔보는 시선을 가졌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설명하고 입증한 사실들을 이해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에는 경찰·사법부·변호사·언론·여론이 다 포함된다.”프랑스 전체가 한국의 수사 결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 수사팀에서는 결과를 오래전부터 확신해왔다. 국내 언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외국 언론의 반응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들 부부가 프랑스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건 초기부터 사건 관련자가 대부분 프랑스인이고 외교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적법 절차를 지키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수사 초기에는 왜 남편을 출국하도록 했는지에 대해 언론의 비판이 거셌다. 외국인이어서 제대로 수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본 게 아니냐, 수사 초기 판단을 잘못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질질 끌었다는 등의 비판이 있었다.
= 남편인 장 루이 쿠르조는 현재까지도 참고인 신분이다. 어려울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만, 원칙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신고 당시 아내는 이미 출국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상태에서 남편을 출국금지했다면 더 큰 문제가 됐을 것이다. 인질도 아닌데 ‘남편 잡아놨으니까 들어오라’고 하는 셈이 된다.
후속 조처는 무엇이 있나.
= 아직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지만 수사관이 파견되면 협조할 것이다. 또 시신 인계 요청이 있으면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질 것으로 본다.
수사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이 언론과의 관계였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다는 얘기인가.
= 보통 수사에서는 (수사 대상자를 압박할 수 있는) ‘히든카드’가 필요하다. 그런데 언론에 자꾸 수사 내용이 노출되니까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초기에는 30명 안팎의 기자들이 상주했다. 기사 경쟁이 심했다. 신중하려 해도 언론은 몇 발짝 앞서나가면서 추측성 보도를 했다. ‘백인 소녀’의 등장 같은 게 그런 대목이다. 목격자도 지나친 취재 경쟁 때문에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했다. 심지어 차를 타고 어디로 나갈 때면 혹시 언론에서 따라붙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인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가 한국 시청자에게도 큰 인기를 끄는 등 과학수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이번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것이 한국 과학수사의 수준 아니었나.
= 한국의 DNA 분석기술은 전세계적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들까지도 수사가 잘됐다고 인정하고 있다. 결과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프랑스 기자들이 이번 사건 때문에 방배서를 많이 방문했지만, 그들도 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사건이 왜 이런 식으로 전개됐는지, 왜 그 사실이 드러났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솔직한 대화로 남편 무죄 확신
수사 초기에 수사의 방향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등 혼선이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
= 사실 언론에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내부적으로는 일찍부터 방향이 잡혀 있었다. 수사를 하다 보면 ‘감’이 오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런 ‘감’을 가지고 수사를 해서는 안 되지만. 첫날 숨진 두 아이를 직접 봤는데 ‘백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명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수건에 싸여진 뒤 비닐봉지에 들어 있었다. 정확한 인종 구분은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서 나오는데 결과를 기다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신 한 구는 부패가 약간 진행됐지만, 다른 하나는 부패가 거의 안 된데다 해동한 뒤에 부검을 하는 과정에서 색깔이 뚜렷이 드러났다. 해동이 되자 방금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선홍색이었고 피부는 뽀송뽀송하기까지 했다. 대외적으로는 ‘백인’ 또는 ‘백인 혼혈’이라고 말했지만, 수사팀 내부에서는 백인종으로 방향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냉동 상태로 시신이 보관되면 법의학적으로도 사망 추정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요청해도 (법의학자들조차) 얘기를 못해줬다. 처음 본 느낌은 최소한 1년은 넘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5일쯤 지나면서 주변 인물들이 배제되고 부인에게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2003년 산부인과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을 때 사망 시간이 3년 전일 수도 있겠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수술 당시 병원에서 보관해놓았던 조직의 샘플을 확보하고, 부인이 쓰던 물건에서 나온 DNA를 분석하게 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확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건 실체와 관련해 아직도 여전히 궁금한 점은 남편이 어떻게 그 사실을 몰랐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연이어 임신을 했고 부부관계 역시 정상적인데 남편이 아내의 임신과 출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남편 장 루이는 라는 아마추어 연극에 출연한 사실도 보도됐다.
= 연극 출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프랑스 쪽 수사에서 피해 아이가 한 명 더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서 무엇이라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부부간의 은밀한 일을 남들이 속속들이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지만 우리 수사팀은 남편이 몰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진행해왔다. 남편은 계약기간을 1년 남긴 상황에서 잠깐 한국에 온 때에 우연히 시신들을 발견해 신고한 것이다. 2003년 산부인과 수술을 받으러 갈 때 부인은 119 구급차로 실려갔는데 함께 갔던 부인의 프랑스인 여자친구조차 임신·출산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집을 압수수색했을 때 확보한 컴퓨터에는 2002년 당시 사진이 여러 장 들어 있는데 역시 임신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남편을 3일 동안 조사할 때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솔직한 대화도 나눴다. 그의 표정이나 태도를 종합해보면 남편을 의심하기 어렵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수사기관과 법의학자의 협력 활발해야
법의학에 관심이 많아 개인 홈페이지도 만들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사건은 법의학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 아닌가.
= 어릴 때 꿈이 의사였다.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다. 경찰대학에도 법의학 과목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부족해 경찰대학 도서관에 있는 법의학 관련 사건 기록들을 모두 탐독했다. 주요 사건의 경우에는 전체 내용을 다 외울 정도다(실제로 그는 몇몇 사건들의 사례를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간접 경험이기는 하지만, 관심이 많다 보니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수사기관과 법의학 종사자들의 협력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경찰이 추진 중인 검시관 제도 역시 이런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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