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아 소설가· 지은이
지난 여름은 어느 해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늘 여름의 폭염은 그렇게 ‘어느 해보다도’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 그리고 요즘처럼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견디기 힘들었던 지난 여름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가을 맞을 채비에 마음이 설렌다. 있는 듯 없는 듯 느낄 듯 말 듯 금세 지나가버릴 가을일지라도. 아직 자연은 그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여름은 가을이 되고 가을은 다시 겨울이 되고야 만다. 그 지당한 자연의 법칙을 새삼 실감해야 하는 내 마음 한구석에 석연치 않은 씁쓸함이 남는다. 가을이 너무 짧다. 갈수록 더 그러해진다. 이러다 여름과 겨울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어느 해보다도’ 견디기 힘든 더위와 추위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지. 이 세상을 온통 물들이고 있는 두 가지 색깔처럼 말이다.
무채색에서 빨강·파랑을 찾아내는 세상
이른바 포스트모던한 이 시대는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인종은 물론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들의 가치도 인정받아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드높인다. 과거 천박한 광대로나 취급받았던 무대 위의 댄서들은 이제 아이들의 가장 큰 선망이 되었다. TV 광고에도 다양성과 차이는 빠질 수 없는 소중한 상품화 전략으로 등장한다. 세상은 온통 다양성과 차이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다양하다고 외치는 목소리만큼이나 우리의 선택도 다양할 수 있을까.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이 시대의 그 무엇들은 실상 아무거나, 내 마음대로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것도 둘 중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택시를 타도 말을 걸어오는 기사님의 색깔을 잘 읽어야 한다. 무심코 섣불리 대답했다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가시방석이 되고야 만다. 뭔가 부탁해야 할 일이 있어 만난 사람이라면 그 색깔을 더욱 빨리 잡아내야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어디에서고 무심코 말을 던지다간 난데없는 돌이 날아온다. 그래서 이제 막 세상으로 글을 내보내는 내 자리가 때론 몹시 버겁다.
사실 나는 애매하게 섞인 파스텔톤의 부드러움과 미묘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쪽인가를 묻는 세상의 논리는 무채색 안에서도 빨강색을 찾아내고 파랑색을 찾아낸다. 소설이 어느 쪽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마음 가지 않는, 그래서 선택하고도 언제나 양심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 세상의 장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간의 어느 지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지켜져야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간 지대가 이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양극보다 더 많은 부분을 중간 지대가 떠받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 진정한 다양성과 차이가 내재해 있다. 또한 양극을 잇는 가교 구실이 그 속에 숨어 있다. 진보는 보수에서 나오는 것이고 보수는 진보가 있음으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진보의 끝이 보수이고 보수의 끝이 진보인 것이다. 진보를 외치며 보수를 생각해야 하고, 보수를 지키려면 진보의 의미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 극은 서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겨울을 생각하는 지혜를
이제 가을이다. 조금 있으면 산과 들이 단풍으로 물들 것이다. 쥐꼬리만큼 짧게 지나가버릴지라도 봄은 여름이 될 수 없고 가을은 겨울이 될 수 없다. 삼복더위라 할 때의 ‘복’(伏)자에 더위란 뜻은 없다. ‘엎드리다’ 또는 ‘숨다’의 뜻을 담고 있을 뿐이다. 즉, ‘추위가 엎드렸다’는 의미에서 한여름 ‘삼복’이 들었다고 한다. 더위가 엎드리면 추위가 되고 추위가 엎드리면 더위가 된다. 한여름에 겨울을 생각하는 선인들의 지혜를 다시 돌이켜보아야 할 때다. 여름은 겨울이 있기에 여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가려낼 수 없는 무수한 빛깔의 봄과 가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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