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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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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퇴임식

등록 2006-09-15 00:00 수정 2020-05-02 04:24

▣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대학에서 2년을 보내고 난 1993년 2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 우울증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 그때 나는 자취방에서 코펠에 라면이나 끓여먹으며 문을 꼭꼭 닫고 살았다. 그 방에서 내가 했던 일이란 김광석의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는 것과 종잡을 수 없는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 기나긴 낮잠과 불면의 밤을 반복하는 것밖에 없었다.

막막하던 겨울을 위로한 ‘청구회 추억’

2년 동안 나는 야학과 학생회, 시위현장을 오가며 ‘다르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스무 살 그 나이대가, 그 시절 대학 분위기가 또한 그랬다. 그러나 2년 뒤, 나는 외로움과 열등감, 옹졸한 자기애로 뭉친 우울한 영혼이 되어 있었고, 이미 네 학기 학점은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나는 사는 일에 자신을 잃고 있었다.

그 어느 날 나는 자취방을 나와 담배 고린내가 밴 외투깃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 ‘꾼’들의 아지트였던 ‘장백’이라는 사회과학 서점으로 갔을 것이다. 거기 신간 매대에 시커먼 장정의 두껍고 커다란 책이 쌓여 있었다. 선생님의 옥중서한을 영인본으로 묶은 라는 책이었다.

의 앞머리에는 에 없었던,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시절 선생님이 쓴 글과 그림들이 누런 갱지에 담겨 있었다. 나는 얼른 읽기 시작했고, 완전히 몰입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빈 지게를 지고 하늘을 바라보는 깡마른 지게꾼, 성냥갑을 쌓아놓은 것 같은 산동네 비탈길, 머리통은 크고 배는 올챙이처럼 볼록한 아이, 아기를 업고 행상길에 나선 어머니의 고단한 맨발, 이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눈가가 젖어왔다.

그리고 ‘청구회 추억’을 읽었다. 서오릉 소풍길에서 우연히 만나 사귄 문화동 산동네 소년들, 그들이 선생님과 만나는 동안 스스로 만들고 지켰던 약속의 목록은 이러했다. 새벽에 일어나 마라톤하기, 동네 비탈길 쓸기, 책 돌려 읽기, 물지게 져다주기, 눈으로 미끄러운 골목길에 연탄재 깔기…. 그들은 중학교 입학금이 없어 자전거포에 취직해야 하는 가난한 소년들이었지만, 영혼은 이슬처럼 맑았다. 선생님이 육군 수도병원에 잠시 입원했을 때 삶은 계란을 싸들고 병문안 왔다가 위병소에서 되돌려보내진 아이들, 언제나 선생님 손을 잡고 다녔던 어린 꼬마는 문화동에서 혼자 걸어서 병원까지 왔다가 신분증이 없어 되돌아갔다지….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결국 후드득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아이들의 우정, 그들의 가난, 1960년대 세상을 남김 없이 사랑하고 아파하던 청년은 결국 형극의 나날 속으로 그렇게 스스로 걸어들어간 것이구나. 그 막막했던 겨울날, 내 인생에 찾아온 따뜻한 위로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선생님의 17년 교수생활을 마감하는 퇴임식이 치러졌다. 나는 그간 세상이 캄캄하게 느껴질 때 자주 선생님을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기다리던 내 간절함이 조금씩 퇴색해왔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의 말씀이 조금씩 추상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선생님의 ‘관계론’이 소통되는 방식은 좀 ‘존재론’적으로 느껴졌다고, 그래서 선생님의 사상이 ‘고통의 바깥자리’에서 교양의 한 자락으로 변모돼가는 것을 느꼈다고, 세상의 악한들에게도 열려 있는 선생님의 너른 품이 속 좁은 내게는 문득 안타깝기도 했다고, 나는 그렇게 고백하고 싶다.

선생님을 ‘한 인간’으로 돌려드리며

선생님의 퇴임식은 참 따뜻한 자리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 가지로 내심 불편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 옥에 가두어도 시원찮을 어떤 재벌의 2인자 누구마저도 선생님과의 인연을 들먹이는 데서는 속이 좀 상했다.

‘사상가’와 ‘선비’의 칭호는 세상이 선생님께 부여한 것이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자연인인 선생님은 나와 같은 이들의 기대에 찬 시선 때문에 부담과 속박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고백이 죄송스럽다. 아, 이제 선생님도 칠순을 바라보시는구나. 이제 선생님을 내 마음속에서 ‘한 인간’으로 돌려드려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선생님의 건강을, 앞날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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