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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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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감독됐어, 아들이 주연배우야

등록 2006-09-01 00:00 수정 2020-05-02 04:24

경기 안성 너리굴 문화마을 영상캠프, 영화 3박4일 제작기… 시나리오 쓰기에 머리 뜨거워지고, 촬영에 쩔쩔매다가 고생 끝 7분42초작

▣ 안성=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이렇게 ‘입봉’의 기회를 맞는 것인가”라는 기대는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캠코더를 만져본 기억도 없는데 어쩌지…” 하는 한숨으로 바뀌었다. 경기영상위원회(운영위원장 이현승)가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너리굴 문화마을’(아래 너리굴마을)에서 3박4일 동안의 ‘제1회 영상캠프-영화가족놀이터’를 마련한다는 말을 들은 게 한 달쯤 전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희상이네’가 참가한다기에 덩달아 기획안을 냈다.

‘혼자 놀기’를 즐기는 아이가 ‘너리굴’(비봉산 자락 넓은 골짜기를 일컫는 말) 마을에 들어가 여럿이 노는 재미에 빠진다는 내용이었다. 기획안을 심사해 선발한다기에 갑작스레 마련한 것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보름 전에 참가 통보를 받았다.

극영화? 다큐멘터리? 기획안이 안나온다!

지난 8월18일 오후 너리굴마을 들머리에 들어섰다. 하지만 캠코더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기회에 캠코더를 장만할까” “디지털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을까” 등을 놓고 고민하다 경기영상위로 전화를 했더니 “캠코더 준비가 어려우면 몸만 와도 된다”면서 고민을 풀어주었다. 덕분에 영상 시대의 필수품인 캠코더도 없는 자칭 ‘얼리 어답터’ 신세를 당분간 지속해야만 했다. 예정대로라면 도착하면서부터 아들 지환이의 일상을 캠코더에 담아야 했다. 하지만 영화의 기본도 모르면서 덤빌 순 없는 노릇. 영화 촬영이라면 멀리서 배우들이 움직이는 장면을 방송이나 잡지에서 본 게 고작이었다. 원래 기획안은 접어두고 영화의 기본을 차근차근 익혀야만 했다.

곧바로 영상물 제작 과정과 기획에 관한 강의가 시작됐다. 이미 도착해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단체 티셔츠를 입은 18조(가족별) 80여 참가자가 있었다. 여기에 독립영화 등을 연출한 이마리오 감독이 대표 강사로, 미디어 교육 전문가 7명이 조별 강사로 영화 만들기 전 과정을 도왔다. 이현정 강사는 “여러분은 가족 영상 다이어리를 만들기 위해 영상캠프에 참여했다”면서 “짧은 영화를 찍지만 관객을 염두에 둔 작품이니 다양한 영화의 기법을 활용해 기획 의도를 충분히 살려낼 것”을 주문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새로 기획을 해야 하는 처지라서 강의 내용은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차라리 바람이 부는 ‘너른 골’에서 푹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미 기획안을 마련한 가족들은 담당 강사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속한 4조를 담당하는 강수연 강사가 “지환이네는 무엇을 찍을 것이냐”고 지나가는 말로 묻는데도 준비되지 않은 자는 신경이 쓰였다. 그럴수록 의연해야 했다. 속으로는 대답을 피하고 싶어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극영화를 찍으려고 하는데 강사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이라서 방향을 바꿔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강수연 강사가 “걱정하지 말고 극영화 준비하세요. 극영화를 찍은 경험이 많은 강사도 있으니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막막한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데 마을이나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작품 ‘불시착 비행기’에서 단서 얻다

너리굴마을은 다채로운 문화예술이 자연의 품에서 숨쉬고 있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작품이 늘어서 있고, 발길을 옮기면 자연과 문화 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발등의 불을 끌 수는 없었다. 당장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해결해야만 촬영과 편집 등 남은 사흘 동안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강의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고민을 한 방에 날릴 만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산속 비탈진 곳에 버려진 소형 비행기 몸체였다. 애당초 ‘불시착 비행기’라는 제목으로 설치된 실제 비행기 작품이었는데 수리를 미뤄 방치된 것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비행기를 모티브로 삼아 ‘지환의 비행’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사실 모티브 하나만 있을 뿐 시나리오를 만들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을 리 없었다. 너리굴마을 곳곳에 비행(飛行) 관련 촬영지가 있는지를 살펴야 했다. 다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더니 뜻밖에 괜찮은 장소가 많았다. “딱이다”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이었다. 예컨대 곤충학습관에서는 비행의 원리를 터득하고, 벽에 걸린 세발 자전거 작품은 나는 자전거에 대한 소망을 담는 식이었다. 누가 작위적이라는 비난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할리우드처럼 1천억원가량 투자해 관객 동원에 성공하려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씩 시간을 투자할 수도 없는 처지이니 제한된 공간에 있는 요소들을 활용해야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전 일정을 유쾌하게 보낼 것 같았다.

실제로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면서 보는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야간 프로그램으로 영화 를 봤다. 지난해 2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소아 백혈병 권위자이자 연극인인 고 이항 선생이 출연한 작품이었다. 차마 휴대전화 번호 목록에서 여태 지우지 못한 이항 선생이 영화 속에서도 실제처럼 의사로 나왔다. 이제야 이항 선생을 보내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장면마다 감독의 의도를 읽고 싶었다. 나로선 신비의 물통을 가진 ‘타잔 아저씨’가 두 아이를 보듬고 나는 장면이 의아했다. 실화에 바탕한 영화라는데 유치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임태형 감독은 “하늘을 날 정도로 기쁜 아이들의 맘을 맘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있었던 임 감독과의 대화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이해하는 자리였다. 임 감독은 “누구나 영화를 많이 보고, 작은 영화라도 많이 찍으면 감독이 될 수 있다”면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의 철학과 세계관”이라고 덧붙였다. “영화가 테크닉의 결과가 아니라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도 새롭게 다가왔다. 평소엔 몰랐지만 영화만들기 과정에서 만난 ‘프로 감독’은 하늘만큼 높아 보였다. 감독과의 대화가 끝난 뒤 자리를 뜨려고 할 때 감독의 사인을 받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 나이에 저 줄에 끼어야 하나” 하면서 웃음을 머금고 있던 내가 어느 순간 줄 끄트머리에 버티고 있었다. 나도 티셔츠에 임태형 감독의 사인을 받았다.

피흘리는 장면, 식당에서 케첩 공수

벌써 자정이 되어가는데 시나리오는 어찌해야 하나. 강수연 강사는 다음날 촬영 준비를 충실히 하라면서 “시나리오에 맞게 장면별로 스토리보드(콘티뉴이티)를 만들어 아침에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문자로 시나리오를 작성한 뒤 이를 시각화하는 그림까지 덧붙이라는 것이다. 스토리보드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배우가 움직이는 동선과 카메라의 위치, 촬영 시간 등을 컷별로 정해야 했다. 실제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제목 ‘지환의 비행’을 ‘비행소년’으로 하면서 비행은 ‘나는 것’과 ‘나쁜 짓’ 두 가지를 뜻하는 것으로 했다. 온갖 나쁜 짓을 하는 게 날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영화의 성공 여부는 시나리오가 결정한다는데 두 시간여에 걸쳐 만든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는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강수연 강사가 시나리오를 수정한다고 해도 ‘뾰쪽수’가 없을 게 뻔했다. 그러니 스토리보드까지 만든 것을 가상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둘쨋날 오전 강의는 디지털 비디오 캠코더의 작동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처음 만지는 캠코더가 쓸모있는 장난감으로 변신하는 데는 두 시간여가 걸렸다. 캠코더 촬영법 강의는 간단하게 이뤄졌다. 캠코더의 버튼을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특별한 지침이 있었다면 줌 기능을 가급적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먼 곳의 피사체를 간편하게 잡을 수 있지만 흔들림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배우였다. 5분 분량의 영화를 거의 혼자 이끌어가야 했다. 그것도 ‘출연료’ 없이 섭외하려면 아홉 살 배우로 아들 녀석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그것이 영화캠프 참가 의도이기도 했지만). 지환이의 연기는 간단치(?) 않았다. 공상으로 처리되는 비행기 추락 장면에 특수분장까지 있었다. 미리 분장 재료를 준비하지 않아 모두 현장에서 조달했다. 피를 흘리며 비행기에서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 빨강펜으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강수연 강사가 “고추장이나 토마토 케첩이 낫다”고 해서 급히 식당에서 케첩을 구했다. 얼굴에 케첩을 칠해 피범벅이 된 모습을 연기한 지환이는 그것만으로 재밌는 듯했다. 케첩 칠을 한 얼굴로 신나게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다음 장면 연기에 들어갔다.

사실 지환이가 연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의외였다. 무엇이든 ‘거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는 아이였다. 8년 동안 찾지 못한 아이의 ‘뭔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연기의 끼가 아니라 마음이 내키면 시키지 않은 것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찍을 때 화면이 무난해 보여 다음 장면 촬영으로 가려고 했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한번 다시 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이는 비행소년을 연기하면서 설치미술로 만든 ‘원형 철망 시소’를 로켓으로 여기고, 슈퍼맨 복장(아줌마 치마)에 우산으로 날개를 만들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비행(非行)이 완벽하지 않아 비행(飛行) 수업으로 느껴진다는 게 결정적 한계였다.

‘거부’에 익숙했던 아이, 연기에 집중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된 촬영은 해질 녘까지 이어졌다. 오후 내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연기에 몰두한 아이는 마지막 장면 촬영 때 긴 대사를 막힘 없이 날렸다. 긴 하루가 갔지만 촬영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비행학교에 들어가 ‘무중력 훈련’을 받는 모습은 편집을 하는 셋쨋날 아침에 촬영했다. 대형 쓰레기봉투를 넣어두는 굵은 철망이 무중력 테스트 기구를 대신했다. 아이는 머리에 손을 올리고 제자리를 도는 모습으로 촬영을 마무리했다. 나는 여기에서 훈련조교를 맡는 장면에 출연해 몇 차례 찍혔다. 이 장면은 편집 과정에서 훈련조교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만 나오는 식으로 처리됐다. 배불뚝이 조교가 등장하면 비행학교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내 식의 배려였다.

“영화 만드는 게 어렵다는 말은 편견일 뿐”이라는 이마리오 대표 강사의 말을 실감한 것은 편집 과정에서였다. 대부분의 컴퓨터에 내장된 동영상 편집기 ‘윈도 무비 메이커‘를 이용하면 아쉬운 대로 편집을 할 수 있었다.

‘프리미어’나 ‘AVID’ 같은 전용 프로그램처럼 완성도 높은 편집은 어렵다 해도 초보자가 원하는 수준의 화면 효과를 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30여 분 분량의 촬영 화면을 5분 분량으로 편집하기는 쉽지 않았다. 제목과 자막, 제작진을 넣고 지환이가 컴퓨터 그림판에 그린 그림을 애니메이션 비슷하게 처리한 것만으로 1분가량의 시간을 소모했다. 촬영 화면 중에서 영화에 사용할 분량은 4분밖에 없는 셈이었다.

또 한 번 창작의 껍데기를 갈아입는 작업이라는 편집. 저마다 촬영지로 나갔던 18개 조가 모두 편집실로 사용할 강당에 모여 바꾸고 빼고 자르는 작업을 했다. 부모가 촬영한 화면을 청소년 아들이 편집하면서 으름장을 놓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별도의 내레이션을 녹음하려고 했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아 자막으로 처리해야 했다. 게다가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려고 가져간 CD는 컴퓨터에 호환이 되지 않아 음악을 구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다행히 강수연 강사가 준비한 음악을 쓸 수 있었다. 빈소년합창단의 노래와 테크노 물방울 등 세 곡을 넣었다. 저작권자에서 허락도 없이 사용했지만 상업영화일 가능성은 0%이니 당사자가 시비를 걸 기회도 없겠거니 했다.

처음 접한 윈도 무비 메이커가 익숙해질 만하니 저녁 상영시각이 다가왔다. 7분42초 분량의 편집본을 5분 분량으로 줄이는 데 적어도 두 시간가량 필요할 듯했다. 나름대로 극영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5분은 너무 짧은 듯싶어 강수연 강사에게 사정을 말했다. 강 강사로선 18개 조의 편집본을 모으는 게 급선무였다. “그냥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18개 조 가운데 가장 긴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때만 해도 자르지 못한 대가로 지루한 화면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고통을 알지 못했다. 완성본을 본 지환이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장면이 들어갔다며 짜증을 냈다. “다시 찍기도 했는데 싫은 장면을 넣은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컷을 나누고 붙이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음악 얹고, 자막처리하고… 꿋꿋하게 시사회까지

드디어 영상캠프 시사회가 시작됐다. 그렇게 작은 영화로 관객들 앞에서 데뷔를 한 것이다. 물론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설렘과 긴장이 시사실에 흐르는 가운데 17조 정계현씨네의 로 막이 올랐다. 너리굴의 일상을 재밌게 다룬 작품이었다. 이어 등장한 18조 서형빈씨네의 라는 자연 다큐멘터리 작품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사향제비나무 애벌레’를 보여주면서 “애벌레가 풀잎에 매달려 우리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고 말할 땐 공중파 다큐를 보는 듯했다. 2조 김영애씨네의 는 참가 가족의 엄마와 딸, 아들이 부딪치고 갈등하는 이유를 인터뷰로 구성해 담담하게 보여줬는데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뒤늦게 영화감독의 꿈에 다가선 5조 고요진씨는 휴대전화 벨소리를 다운받아 의 음악으로 사용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10조 중학생 김현승군 가족은 용돈 문제로 아빠와 충돌하는 모습을 에 담았고, 8조 김성수씨네는 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2002년에 캠코더를 구입해 그동안 40분 동안 촬영한 뒤 한 번도 필름을 꺼내지 않았다는 7조 정계선씨네는 딸과 아들이 엄마를 돌부리 회오리바람 등으로 공격하는 내용의 에 오래된 필름에 있던 아빠를 깜짝 등장시키는 ‘마술’을 부리기도 했다. 우리 조의 은 아이의 ‘연기력’으로 부담스런 상영시간을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그렇게 18개 조의 작품 시사회가 끝났을 때 모든 사람이 뿌듯해했다. 누구는 집안에 숨어 있는 캠코더를 찾아 다음 작품을 만들겠다고 했고,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이어갈 소중한 기회였다는 학생도 있었다. 작품은 초보자의 습작일 뿐이라는 사실도 실감해야 했다. 한 강사에게 작품의 수준을 물었더니 “영화 만들기 경험 자체가 소중하다”면서 “계속 찍고 편집하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놀이의 재미가 스멀스멀 떠오르는 지금, 나는 캠코더 구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은 조급증에 시달린다. 1인당 참가비 3만원으로 이보다 즐거울 수 없었던 3박4일이었다. 게다가 지환이는 고요진씨의 희망사항인 장편 데뷔작의 출연을 ‘제의’받기도 했다. “고요진씨,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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