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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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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전쟁, 끝내 ‘정신승리’만 승리하나

‘해협 먼저 개방, 핵 문제 등 후속 협상’ 가닥… ‘이란 핵=호르무즈’만 허망하게 확인한 참극
등록 2026-05-08 12:09 수정 2026-05-08 15:3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5월6일 백악관에서 종합격투기(UFC) 선수단을 접견하며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5월6일 백악관에서 종합격투기(UFC) 선수단을 접견하며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쟁은 끝난 것 같다. 교전의 양쪽 당사자가 더는 싸울 생각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전쟁의 끝이 평화의 시작은 아니다. 큰불은 잡았어도 잔불 정리가 남았다. 잔불을 쉽게 보면 다시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불법이고 무모했다. 그 끝이 시작됐다. 세계가 숨죽인다.

2026년 5월5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기자들 앞에 섰다. 루비오 장관은 “작전명 ‘장대한 분노’(에픽 퓨리)는 목표를 모두 달성해 종료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과 진행 중인 협상에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 작전명 ‘자유’(프로젝트 프리덤)를 잠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작전명 ‘자유’는 이란의 봉쇄로 갇혀 있는 세계 각국의 선박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미군이 호위하겠다는 내용이 뼈대다. 두 가지 발표를 종합하면, 미국은 이란과 더는 싸울 생각이 없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미국이 이란 제안 받아들인 꼴

 

“작전명 ‘장대한 분노’는 종료됐다. 그 단계는 이미 끝났다. 작전의 모든 목표를 이뤘다. 추가적인 상황 발생을 원하지 않는다. 평화의 길을 원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을 선호한다. 이란과 마주 앉아 향후 협상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싶어 한다. 호르무즈해협 전면 개방을 통해 세계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루비오 장관은 백악관에서 연 언론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향후 협상을 위한 양해각서’는 뭔가? 먼저 종전과 함께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고, 핵을 포함한 민감한 문제는 후속 협상을 통해 매듭짓자는 이란의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이란의 제안에 대해 “핵 포기 먼저”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액시오스와 로이터 통신 등은 “미국과 이란이 1쪽 분량의 종전 양해각서 체결에 근접해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바뀐 게다.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을 왜 ‘해방 작전’이라 번역할까? 일제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조선의 ‘해방’은 흔히 ‘리버레이션’(liberation)으로 번역한다. ‘노예 해방’은 ‘이맨시페이션’(emancipation)으로 부른다. 호르무즈해협 안쪽에 갇힌 유조선과 상선의 통항 재개는 ‘해방’보다 ‘자유’에 가깝다. ‘해방’은 과한 이름이다. 작전명 ‘자유’는 5월4일 시작돼 5일 멈췄다. 그사이 호르무즈해협에 발이 묶인 한국 상선 ‘에이치엠엠(HMM) 나무호’에 사고가 났다. 기관실에 원인 모를 화재가 난 건데,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란의 소행이라고 규정했다. “공격당했다”는 동맹에 대한 위로는 없었다. 그저 한국을 콕 짚어 ‘작전’ 동참을 요구했다. 국내에선 호들갑이 들끓었다. 그럴 일이었나? 불과 몇 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은 작전명 ‘자유’ 중단을 선언했다. 동맹은 허상이다.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침공하자,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사실상 봉쇄했다. 세계 원유·천연가스 물동량 20%가 막혔다. 세계경제가 휘청였다. 이란은 2003년 이후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다. 미국 정보당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일치된 평가다. 실제 더는 그럴 필요도 없게 됐다. 미국의 무모한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이란의 ‘핵무기’임이 확인된 탓이다. 그러니 이 전쟁은 얼마나 허망한가?

2026년 5월6일 프랑스 해군 소속 군함이 홍해 남부로 가기 위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5월6일 프랑스 해군 소속 군함이 홍해 남부로 가기 위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잃을 ‘말의 무게’조차 남지 않은 트럼프

 

4월8일 미국과 이란이 잠정 휴전에 합의하고, 11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대면 협상에 나섰다. 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은 이란에서 출항하는 모든 선박을 가로막겠다며 아라비아해에서 봉쇄 작전에 나섰다. 해상봉쇄의 목적은 이란 경제 옥죄기였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강화해 세계경제를 옥좼다. 누가 오래 버틸지, 물속에 고개를 박고 숨참기 싸움이 시작됐다. 먼저 움직인 건 미국이다.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통항을 위한 ‘자유’ 작전을 선언했다. ‘인도주의적 행동’으로 포장했다. 갇힌 선박을 ‘해방’시키기 위해, 미군 함정이 ‘호위’하겠다고 했다. 그랬나?

‘자유’ 작전은 수포가 됐다. 그럴 수 있었다면, 전쟁 초기부터 그리했을 터다. 그럴 수 없었기에, 그리하지 못했다. 호르무즈해협이 ‘덫’이기 때문이다. 들어가면 크게 다친다. 미군이 다치면 미국이 뒤집힌다. 비좁은 해협에서 미군 함정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건 소형 고속정과 무인기가 전부다. 그래서 안 들어, 아니 못 들어갔다. 그걸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미군 중부사령부는 5월3일 보도자료를 내어 ‘자유’ 작전에 구축함 등 군함 10여 척과 각종 무인기, 병력 1만5천여 명이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무엇을 했나? 들어가지 못하는 미군은 해협 가까이 접근해, 안에 갇힌 선박과 선사와 보험사를 향해 ‘나오라’고 외쳤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작전은 1박2일 만에 중단됐다. 미국은 더는 잃을 ‘말의 무게’가 없게 됐다. 한국의 ‘파병 고민’이 부질없었던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자유’ 작전 ‘잠시 중단’의 이유로 “파키스탄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요청에 따라” “엄청난 군사적 성공”과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이란과의 합의에 엄청난 진전이 있기 때문”이란 말을 앞세웠다. “합의안이 실제 마무리돼 서명이 이뤄질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란 단서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짧지 않은 소셜미디어 글은 숱한 전제가 붙은 한 문장이었다. 투자정보업체 ‘스탠더드 앤 푸어스 세계 시장정보’ 자료를 보면, 작전 첫날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단 네 척이었다. 작전 종료를 선언한 이틀째엔 단 한 척도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지 못했다. 전쟁 전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하루 평균 120~130척이다. 아무도 미국을 믿지 않았다는 뜻이다.

 

트럼프 ‘정신 건강' 의심은 커져만 가고

 

전쟁 전까지 미국은 중동 일대에 약 4만 명의 병력을 주둔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이라크·시리아·요르단·카타르·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의 군사기지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란 침공 뒤 중동에 배치된 미군은 5만 명을 넘어섰다. 무차별적 폭격은 끝났다. 미군의 군사행동은 해상봉쇄에 국한됐다. 그럼에도 하루 전쟁경비는 10억달러(약 1조4500억원) 이상이다. 언제까지 버틸 텐가?

“내 지지율은, 시엔엔(CNN) 방송 여론조사를 보면 공화당 안에선 사실상 100%다. 지지율이 100%다. 시엔엔 방송 보도 봤나? 아무도 그 얘길 안 한다. 시엔엔 방송, 내 생각엔 그 조사를 한 사람들 다 해고됐을 거 같은데. 하여튼 공화당 내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그러니까 100% 공화당을 장악한 마가 진영에서 내 지지율은 100%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5일 백악관 공개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엔엔 방송은 바로 반박 보도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시엔엔 보도는 엔비시(NBC) 방송이 3월5일 공개한 여론조사 내용을 인용 보도한 게다. 당시 조사에서도 전체 유권자층에선 이란 전쟁에 대한 찬성(41%)보다 반대(54%) 여론이 높았다. 전쟁이 두 달을 훌쩍 넘긴 최신 여론은 어떨까?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유고브가 실시해 5월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집권 2기 들어 최저치인 30%까지 떨어졌다. 반대 여론은 63%까지 치솟았다. 11월3일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내부에서 “전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모한 이란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1일 밤 11시3분부터 11시45분까지 무려 11차례나 ‘폭풍 포스팅’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의 포스팅에 자신의 얼굴 사진이 등장했다. 사우스다코타주 페닝턴에 자리한 러시모어 국립기념지(이른바 ‘큰 바위 얼굴’)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역대 대통령(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네 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러시모어 국립기념지에 자신의 얼굴이 등장하는 인공지능(AI)이 만든 사진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2026년 5월6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도로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숨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대형 초상이 내걸린 거리를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6년 5월6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도로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숨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대형 초상이 내걸린 거리를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리가 이미 이겼다. 근데 나는 더 크게 이기고 싶다. 우리는 이란 해군을 파괴했고, 방공망도 파괴했다. 다른 것도 다 파괴했다. 이란의 방공 장비와 레이더를 봐라. 이란 지도부를 봐라. 우리가 다 파괴했다. 우린 이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7일 극우 인터넷 매체 뉴스맥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란이 군사·경제 측면에서 크게 위축됐다고, 이란이 향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어야만 항구적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우리가 아는 미국’의 시대가 이미 저물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가 아는 미국’의 시대 이미 저물어

 

“미군이 지금 당장 철수한다 해도, 이란은 전후 재건·복구에 족히 20년은 걸릴 것이다. 실제 재건·복구가 가능하다 해도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론 충분치 않다.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는 확실한 보장이 필요하다. (…) 일단 핵무기를 보유하면 이란은 이를 실제 사용할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봐서 잘 안다. 이란은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고, 미국은 그럴 기회를 줘선 안 된다. 내가 절대 허용하지 않을 거다. 지금 이란 경제는 무너지고 있고, 물가상승률은 100%에 근접해 있다. 우리가 100% 봉쇄해 원유도 팔 수 없다. (…) 내 결정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다고 생각한다. 전세계가 고마워할 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내가 하고 있지 않나.”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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