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소주 한 병 추가요~.”
술자리가 익어가면 이런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소주 한 병 추가…. 죽도록 가난하지만 않다면, 그렇게 부담스러운 외침은 아닙니다. 360㎖, 알코올 20~23%, 3천원. 만만한 가격에 쉽게 취할 수 있는 서민의 술입니다. 어느 날 음식점에서 소주 한 병을 추가 주문하면서 색다른 상황을 떠올려보았습니다. “ 하나 추가요~.”
얼마 전 인터넷 신문 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떴습니다. “이거 3천원밖에 안 합니다.” 성공회대 연구교수인 김민웅씨가 한미 FTA 특대호를 소개하는 글이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한미 FTA를 입체적으로 완전정복할 수 있도록 잡지를 꾸몄으니 한번 사서 읽어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3천원’을 강조하는 제목에 그만 소주가 연상되고 말았던 겁니다.
한 권과 소주 한 병을 비교해봅니다. 무엇이 더 영양가가 있을까요. 지식상품인 시사주간지와 기호식품인 소주의 원료와 내용물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는 건 무리입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시사주간지 한 권을 읽는 일보다 소주 한 병을 마시는 게 주변 여건상 훨씬 더 쉽겠지요. 소주 한 병에 취할 수 있지만, 시사주간지 한 권에 취하기는 어렵습니다. 중독 효과도 소주가 훨씬 셉니다. 이 소주보다 더 인기 상품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난데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요즘 내부에서는 ‘사원 판촉대회’라는 걸 하고 있습니다. 기자들 개개인에게 목표부수를 할당하고 정기구독을 유치해 오게 하는 사내 캠페인입니다. 거의 매년 벌어지는 연례 ‘부흥회’입니다. 목표를 못 채운다고 불이익을 주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가볍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저마다 틈만 나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인들에게 구독을 권유하는 전화를 합니다.
솔직히 공개적인 지면에서 할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전직 국방장관들 덕분입니다. 그들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합니다. 제 눈에는 그들이 미국에 시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원로’들에게 불경스러운 말씀이지만, 툭하면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는 우리 집 꼬마를 보는 듯 합니다. 부모로부터의 유기 위협을 느끼는 아이들마냥 미군이 떠날까봐 발을 동동 구르는 겁니다.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뻔뻔스러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독자들을 향해 사랑을 갈구하며 노골적인 ‘호객행위’를 하는 겁니다. 믿을 사람은 독자들밖에 없으니까요. “ 부흥회에 ‘성령’의 불길이 충만하도록 축복해 주세요. 가판과 온라인 독자 여러분, 정·기·구·독 신청 전화를 퍼부어 주십시오.”
인터넷 시대에 종이매체가 위기라고 합니다. 은 독자들의 전폭적인 믿음 덕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믿음을 조금만 업그레이드해주십시오. 언제나 ‘처음처럼’ 정신을 잃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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