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경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sano2@hani.co.kr
아침에 일어나 유명 여배우가 광고하는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화장은 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다. 최신 유행 원피스에 명품 토드백을 들고 전공서적 한 권을 겨드랑이에 끼고 집을 나선다. 큰 가방은 여대생답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며 자가용을 몰고 다니던 옛 남친을 그리워한다.
학교 앞에서 유명 상표의 커피와 도넛을 사먹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마치 뉴요커라도 된 듯하다. 복학생 선배를 꼬여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품위 유지를 위해 싸이월드에 올릴 음식 사진을 디카로 찍어둔다. 시간이 남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아이쇼핑을 한다. 친구들과 결혼 상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3천cc 이상 차를 몰고 키 크고 옷 잘 입는 의사면 충분하다. 지금 사귀는 남친은 ‘엔조이’일 뿐.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한다. 에서처럼 멋지게 느껴진다.
최근 한창 뜨는 이른바 ‘된장녀의 하루’다. 스타벅스 커피값을 놓고 왈가왈부하던 사이버 논쟁이 “스타벅스에 집착하는 여성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남성 누리꾼들의 의견으로 모아지면서 된장녀는 유명세를 탔다.
‘된장녀’는 어디서 온 말일까? 그동안 ‘된장’은 한국적 정서와 꾸미지 않는 질박함의 대명사이다시피 했는데, 최근 인터넷에서 쓰이는 이 말의 의미는 전혀 딴판이다. ‘된장녀’가 뜻하는 것이 오히려 기존의 전통적 의미의 ‘된장’과는 반대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원’을 살펴봐야 한다. 어원에 관해선 ‘설’이 많지만, 그중에서 ‘젠장녀 → 덴장녀 → 된장녀’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스타벅스와 패밀리 레스토랑, 명품에 집착하고 뉴요커의 삶을 지향하며 남성을 수단으로 여기는 미혼여성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카툰도 인기다. 대체로 된장녀를 만난 남성이 겪는 난감함과 어이없음을 담고 있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성을 못마땅해하는 된장녀가 외제차 열쇠고리를 발견하곤 곧장 태도를 바꾸는 카툰이 최고의 클릭 수를 얻고 있다.
된장녀에 맞서 ‘된장남’도 등장했다. 된장녀를 삐딱하게 보는 된장남은 좀 코믹하다. “유명 브랜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학교 앞에서 길을 건너다 보니 같은 가방이 세 개나 보인다. G마켓 공구니 어쩔 수 없다.” 뒤따라 조삼모사도 등장했다.
누리꾼들 반응은 된장녀를 향한 비난이 대부분이다. 반면 상품가치도 잘 모르는 남성이 만든 한심한 작품이라는 의견도 있다. 값비싼 테이크아웃 커피 논쟁에서 비롯했지만, ‘된장녀’ 논란은 이름과 꾸밈이 실재를 대체하는 현실에 대한 누리꾼다운 반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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