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바야흐로 선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김종필 선사가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신 이후에 정치판에는 고매하신 말씀이 사라졌다. 그분이 ‘아’ 하면 국민은 ‘어’ 하기 위해 사서오경을 뒤져야 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토사구팽 같은 심오한 사자성어를 어찌 필부필녀들이 알았으리오. 충청도 양반, 김종필 선사의 대를 잇는 호남의 선비, 박지원 거사께서 저무는 시대에 보내는 마지막 송가를 부르셨다. “꽃은 네 번 졌어도 녹음방초의 계절은 다시 왔다.” 박 거사가 법원 선고를 앞두고 하신 말씀이다. 기자들은 ‘녹음방초’의 뜻을 헤아리느라 어리버리했을 것이다. ‘녹음방초’란 나무 그늘이 우거지고, 싱그러운 풀이 돋는 시기를 뜻한단다. ‘꽃이 네 번 졌다’에는 2003년 대북송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뒤 유죄선고 등 네 번의 고초를 겪었다는 ‘은유법’, 2003년 이후 네 번의 봄이 지났다는 ‘중의법’까지 담겨 있다. 그분은 3년 전 구속수감되기 전에도 시적 감수성을 십분 발휘하셨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조지훈 시인의 ‘낙화’를 읊조렸다. 아, 저 탁월한 대구법! 2006년의 발언과 2003년의 발언이 시간을 거슬러 이루는 수미쌍관의 대구법! 그뿐이랴. 그분은 김종필의 선비정신에 장세동의 돌쇠정신까지 겸비하시었다. 박 거사는 유죄선고를 받고 수감되면서 “‘춘향이 이도령을 만나는 것으로 한이 다 풀린다’는 말처럼 원망은 없다”는 최후의 일언을 남기셨다. DJ 선생님이 자신의 무죄를 믿어줬으니 여한이 없다는 말씀. 영남에 전두환-장세동 커플의 지조가 있다면, 호남에는 김대중-박지원 커플의 절개가 있다. 그들에게 열녀문 아니 열남문을 허하라!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지 못하고,
섭섭한 사람에게 섭섭하다 하지 못한다. 마음을 들킬세라 말문을 닫아야 한다. 오세훈, 강금실 후보의 말 못할 사연이다. 하지만 억눌린 욕망은 반드시 돌아온다. 말실수로! “박근혜 대표님, 고맙습니다!” 나는 들었다. 오장육부를 뚫고 오르는 오세훈의 간절한 목소리를. “정치에 정말 속았다.” 나는 보았다. 강금실의 원망 어린 표정을. 누가 금실씨를 정치판으로 유혹했나? 한 번 더 보고 ‘잡고’ 듣고 ‘잡다’. 그들의 솔직한 토크를. “지충호씨 고맙습니다.” “속인 놈들 다 나와”. 그런데 지충호씨가 찌른 사람은 박근혜 대표지만, 정작 피는 강금실 후보가 흘리고 다친 사람은 이명박 시장이라는 말이 사실인가? 그리하여 ‘금실이가 행복한 서울’은 미션 임파서블인가?
오빠가 돌아왔다. 돌아온 남일이와 돌아온 기현이 오빠. 먼저 조용한 남자로 변했던 김남일 오빠가 돌아왔다. 세네갈 경기 뒤에 “역습당하는 순간, 심판이 보지 못하는 교묘한 반칙을 해야 한다”는 남일이스러운 발언으로 돌아왔다. 설기현 오빠도 돌아왔다. ‘설바우도’의 실력이 돌아와야 하는데, 우리 골문을 향해 돌아왔다. 인기 절정의 검색어였던 ‘설기현 역주행’. 세네갈 경기 한국 골문을 향한 역주행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골문을 향해 동점골을 쏘던 실력이 돌아올 날은 언제인가. 제대로 돌아오삼, 기현 옵바!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대통령이 자꾸 거짓말”…수능 마친 고3도 서울 도심 ‘퇴진’ 집회에
“동덕여대 출신 걸러내고 싶다” 산업인력공단 이사장 폄훼 발언
[현장] “박정훈 대령 징역 구형에 결심”…도심 가득 ‘윤석열 퇴진’ 외침
이재명이 유죄 판결 받았는데 한동훈이 위기 몰리는 이유
82살까지 살아도 65살부턴 골골…‘건강한 노화’는 꿈이런가
“국민 요구 모두 거부하니”…서울 도심서 ‘윤 대통령 거부’ 행진·집회
켜켜이 쌓여가는 분노, ‘윤석열을 거부한다’ 2차 시민행진 [포토]
“우크라이나, 러 쿠르스크 점령지 40% 잃어”
[포토] 나이·국경 없이…부산 해운대에 1000명이 모인 이유는?
“명태균에 아들 채용 청탁…대통령실 6급 근무” 주장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