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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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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밥맛

등록 2006-05-19 00:00 수정 2020-05-03 04:24

박정희부터 김대중까지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맛있었던 적은 없었네… 식사하며 이야기를 듣겠다면서 왜 마이크는 대통령 앞에만 있을까

▣ 김선주

기자생활을 오래했던 나에게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청와대에 가보았느냐, 갔으면 무슨 음식을 먹었느냐, 어떤 그릇에 담아주느냐고. 물론 청와대에 가보았다. 그것도 여러 번. 밥도 여러 번 먹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먹은 밥이 맛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놀란 표정을 짓던 육영수 여사

처음 청와대에 들어가본 것은 1970년대 초였다. 고교평준화 정책인가를 도입할 때였던 것 같은데 대통령 아들의 성적이 신통찮아서 그랬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육영수 여사가 각 언론사의 여기자들을 초대해 어머니의 입장을 해명 겸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각사에서 중견급·부장급 이상의 여기자들이 10명가량 참석했다. 내가 다니던 신문사엔 여기자가 나 하나라 어리고 겁 없었던 초짜 여기자인 내가 참석했다.

당시 밤마다 청와대에선 ‘육박전’(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성을 따서)이 벌어지고 재떨이를 던져서 영부인이 다쳤다는 등 소문이 있었고, 어느 방송에선가 한밤의 음악 프로의 디스크자키가 육박전이란 말을 했다가 끔찍하게 혼났다고 수군수군할 때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이 잡혀가서 소식이 없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의 음식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음산하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서 실내로 들어갔어도 여전히 어두웠고, 육여사는 흰색 계통의 한복을 입고 자신의 가족과 관련한 소문과 자녀 걱정을 하였다.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설명했다. 대통령이 차 타고 지나가는 길에 초록색 페인트를 칠해놓고 산림 녹화했다고 하는 것 아시냐고 했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전기 사정이 어려울 때라 절약을 한 것이었겠지만, 당시의 상황처럼 청와대는 음산하고 어두웠고 비밀스러웠다는 기억만 남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각 언론사의 여기자들을 한 명씩 초대했다. 20년이 지나 가본 청와대는 밝고 환했다. 화창한 봄날이어서 꽃들도 만발했고 대통령의 얼굴도 화색이 만발했다. 집권 초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라 대통령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긴 타원형 테이블의 중간쯤에 대통령이 앉았는데 내가 그 왼쪽에 앉았다. 좀 말 안 되는 이야기도 자신있게 해서 우스웠다. 교복 자율화와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에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제복을 입고 일렬로 걸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대통령은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음식은 맛이 있었다. 청와대에서 그 뒤에 먹은 모든 음식을 합해도 칼국수가 최고였다. 정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주방장이 마련한 음식 같았다.

말 많고 까탈스러운 여기자 몇이 어느 때인가 청와대 음식은 왜 이렇게 맛이 없냐고 했더니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박선숙 대변인이 대규모의 식사는 모두 호텔에서 장만한다고 했다. 어느 호텔이 이렇게 음식이 형편없냐고 했더니 한 호텔을 지정하면 특혜 논란이 있기 때문에 몇몇 호텔이 공평하게 돌아가며 한다는 것이었다. 잘하건 못하건 순서가 되면 하니까 경쟁력이 없는 것 같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차례 여기자들과 여성계 인사들과의 오찬 자리를 마련했다. 모든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어떤 말실수도 하는 법이 없었다. 항상 조심스러워서 기자들이 뒤에서 소심증 환자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니까. 건강이 나빠서였는지 주변에서 염려를 많이 해 가까이 가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악수를 할 때 무슨 쪽지나 편지를 절대 드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대통령과 악수할 때 민원이 적힌 쪽지를 잽싸게 전한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그러지 않았는데 핸드백도 바깥에 두고 가라고 했다. 물론 거부했지만.

대통령과 밥을 먹고 나올 때는 기념품으로 시계나 스카프 같은 작은 선물들이 마련된다. 그런데 어느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식사에 초대해 선물을 주었는데, 나중에 펴보니 3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를 통해 정중히 돌려주었지만 100명이 넘는 인원에게 준 현금과 마찬가지인 상품권이 개인 돈이었나 국고였나 궁금했다.

안살림 기록을 하나도 남기지 않다니

노무현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청와대 밥맛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무슨 회의인가를 점심식사를 겸해 청와대에서 한다는 전갈이 있었는데 회사일로 바빠서 가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하고 1년쯤 지나서 노태우 시절부터 청와대를 여러 번 간 재벌 총수와 우연히 밥을 먹게 되었다. 각 대통령의 태도와 장단점을 솔직히 비교해달라고 했더니, 그는 대통령은 대통령이라고 했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 모두가 대통령의 안색만 살피고 있으니까 청와대에 3개월만 있으면 모든 대통령은 똑같아진다고 했다. 얼마 전 청와대 오찬에 다녀온 지인에게 들으니 각계 인사를 청해서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는데 마이크가 대통령 앞에만 있고 참석자들 앞에는 없는 것이 기이하더라고 했다. 전에도 마이크는 대통령 앞에만 있거나 헤드테이블에만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청와대에서 밥 먹으며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지만, 본질은 대통령이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어느 곳에 가도 취재 자료를 집어오는 버릇이 있다. 서랍을 뒤져보니 2000년대의 어느 날 청와대 오찬 모임에서 갖고 온 차림표가 있다. 딤섬, 게살 삭스핀 수프, 메로튀김 어향소스, 돼지고기부추볶음과 꽃빵, 야채탕면 찹쌀떡과 과일이라고 쓰여 있다. 호텔 중식당의 코스 요리처럼 거창했지만 형식이나 맛이나 그릇과 서빙은 대충대충이었다.

어느 대통령 부인이 청와대에 가보니 지난 5년 동안 청와대 안살림에 대한 자료가 하나도 없어서 기가 막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깨끗하게 아무것도 인수인계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을 초대해 어떤 음식을 장만했고 그릇은 어떤 것을 썼는지도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국가적 필요에서 국고를 사용해 준비하는 모든 음식과 의전과 경험은 기록되고 전수돼야만 하고, 그것은 청와대에 있었던 사람들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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