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20대 초반, 160cm, 50kg, 영어·한국어 구사. 커플 매니지먼트 회사의 신상명세서가 아니다. 어린이날 전격 공개된 한국생산기술원이 만든 상반신 로봇이다. 하반신은 마네킹으로 되어 있다. 이름은 ‘이브’(eve)와 ‘로봇’(robot)의 합성어다. 초소형 모터와 제어기가 움직임을 조정한다. 얼굴에만 15개의 모터가 있어서 웃는 표정을 만들고 눈을 깜빡이고 얼굴을 돌린다. 언어는 400개 정도 이해한다. 일본의 상반신 로봇에 이은 두 번째 쾌거라고 한다. 안구 속 카메라는 최초 시도라고 한다.
커플 매니지먼트 회사에 제출할 때처럼 신상명세서는 사실이 아니라 ‘이상형’이다. 지난해부터 착수한 작업에서 나온 인물이 20대 초반일 리 없고 키·몸무게도 실제값은 아니다. 얼굴은 국내 연예인을 두 명 합성한 것이다. 에버원의 표정은 격하지 않고 자상하고 은은하다. 대화 내용은 남자들이 바라는 ‘어시스턴트’에 가깝다. “반가워요.” “예, 안녕하세요. 홍차와 커피가 있는데 뭘 드시겠습니까.” “홍차를 먹고 싶은데….” “심부름 로봇을 시켜 홍차를 갖다 드리겠습니다.” 시연회에서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과 나눈 대화다. 대화 내용은 20대 여성이 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린이날 좋아하세요.”(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날’이다. 쉬는 날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나. 미안하지만 에버원, 사람이 원래 그래.) “좋아합니다.” “어린이날을 좋아하신다니 제 기분도 좋습니다.” 이 말은 ‘에버원이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었다. 이 로봇은 백화점이나 할인점의 안내 서비스, 어린이를 위한 구연동화 서비스, 영화의 특수효과 작업에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에버원이 가장 탁월하게 재현하는 것은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비극이다. 에버원이 진짜 감정이 있다면 매일 저녁 울며 잠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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