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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전] 동백[don baek] 명사. 冬柏

등록 2006-04-04 00:00 수정 2020-05-02 04:24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두껍고 윤기 나는 초록의 잎은 어긋나게 난다. 꽃잎은 안으로 감싸안듯 짧게 둘러선다. 남부 해안 지방은 2~3월, 중부 지방은 3~4월에 꽃이 핀다. 백련사는 4월 초, 선운사·화엄사는 3월 말에서 4월 중순, 향일암은 4월 중순~말 동백이 한창이다. 꽃덩이가 그렁한 동백은 오래 피었다가 바람이 부는 날 뚝뚝 끊겨 떨어져내린다. 토종의 빛깔은 붉다.

송창식은 <선운사>에서 ‘바람 불어 설운’ 날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을 보았고, 서정주는 이른 철에 가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만 들었다(‘선운사 동구’). 하지만 그 기억은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선운사 동구’) 최영미가 읊은 ‘선운사에서’의 꽃도 동백이리라.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아주 잠깐이더군.”(‘선운사에서’) 백제 때 지어진 천년 고찰 선운사에는 입구에서 절 뒤쪽까지 3천여 그루의 동백이 무리지어 있다.

백련사 길도 동백이 장관이다. 고재종은 시린 바람에 볼처럼 이미 붉은 동백을 그곳에서 보았다. “그러나 마음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백련사 동백숲길에서’) 무엇보다 동백을 사랑한 송찬호는 동백교도소에서도 동백을 보았다. “거긴 혁명가들이 우글우글 하다더군/(…) 그리고 거기는 여전히 아름다운/ 장례의 풍습이 남아 있다더군/ 동남풍/ 바람의 밧줄에/ 모가지를 걸고는/ 목숨들이 송두리째/ 뚝, 뚝 떨어져내린다더군/ 나, 면회 간다/ 동백 교도소로.”(‘나, 동백 보러 간다’)

목이 쉬어 남은 것, 아주 잠깐에 졌던 것, 마음속 서러운 꽃부리는 ‘동백림’(동베를린)에서 떨어져내렸다. 지난 1월26일 국정원 과거사위는 건국 이래 최대의 공안사건인 1967년 동백림 사건이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만우절 전날, 독일 대사관이 사건 관련자의 감형을 촉구하며 보낸 외교 문서 등이 공개됐다. 여기에는 사건 관련자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중앙정보부의 공작 내용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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