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애국의 열정에 들떠 있던 날, 지구의 생명은 시들어갔다.
3월16일, 한국 야구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에 2 대 1로 승리하던 시간에 생명의 가치는 개발의 논리에 11 대 2로 패배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김영란, 박시환 대법관 2명만이 생명의 손을 들었고, 다른 11명 대법관은 새만금 사업을 중단할 명백한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날 저녁 9시 뉴스는 30분 넘게 야구 소식을 전했다. 새만금 소식은 그저 스쳐갔다. 그렇게 새만금의 비명은 승리의 함성에 묻혔다. 갯벌 생명들의 “제발 살려달라”는 아우성은 “대~한민국”의 응원 구호에 가리워 들리지 않았다. 효순·미선이의 비명이 월드컵의 함성에 묻혔던 것처럼.
역시 그분은 황제였다. 서울시의 황제였다.
남산 테니스장 맘대로 쓰시고, 테니스 국가대표 마음대로 부르셨다. 테니스장 사용료는 껌값이라 잊으셨다. 17억 재산가에게 600만원 푼돈이야 잊을 만도 하시다. 평소 강조하시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잔돈 받는 일은 있어도 푼돈 내는 일은 들어 있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내셨다니 역시 “왕입니다요!” 테니스 공을 받아 넘기듯 책임도 받아 넘기신다. 서울시 체육회가 “비서실에서 예약했다”고 공을 넘기자 “초청받아서 쳤을 뿐”이라고 맞받아치셨다. 한 번에 세 시간씩 지치지도 않고 치신다는 황제의 정력에, 능숙한 솜씨에 모두들 놀라고 있다. 이처럼 작금의 한반도 도처에 황제가 출몰하고 있다. 부산의 골프 황제, 서울의 테니스 황제. 원래 골프 황제는 타이거 우즈, 테니스 황제는 로저 페더러다. 외국의 황제들은 멋있기도 하건만 국내의 황제들은 멋없기만 하다. 바야흐로 한반도 남반부는 군웅할거의 춘추전국시대로 돌입했다. 제군들이여, 봉기하지 말지어다, 제발!
님은 침묵하시었다.
오랫동안 연희님은 침묵하시었다. 님의 침묵을 읊으면서 그분을 보내드리고 싶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연희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그렇게 그분을 재야로 보내고 싶었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고 앞길에 꽃을 뿌려드릴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나,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노래할 마음도 없었으나, 그분이 차마 떨치고 가시리라고 끝내 믿었다. 하지만 님은 끝내 가지 아니하시었다. 대신 휴대폰 메시지로 오랜 침묵을 깨셨다. “제 삶의 가장 어려운 때 큰 힘이 되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곧 뵙겠습니다.” 곧 뵙겠다니, 님아 제발 물을 건너지 마삼, 제발 여의도로 돌아오지 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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