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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스타] 이치로 입치료

등록 2006-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정국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jglee@news.hani.co.kr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1997년 9월28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98년 월드컵 예선전을 중계하던 송재익 아나운서는 이민성이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리자 이렇게 외쳤다. 그 뒤 이 중계는 ‘송재익 어록’이 되어 ‘도쿄대첩’이라는 말과 더불어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상징했다.
“도쿄돔 천장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9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3월5일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아시아의 홈런왕’ 이승엽 선수가 세계야구클래식(WBC) 한-일전에서 패색이 짙던 8회 초 극적인 역전 2점 홈런을 쏘아올리면서 일본 야구의 콧대를 꺾었다. 경기 뒤 인터넷은 이승엽 선수 칭찬으로 훈훈했다.

‘도쿄돔 대첩’에는 한국의 승리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또 한 명의 조역이 있었다. 그는 일본 야구의 간판타자 스즈키 이치로다. 한국 누리꾼들은 이치로가 메이저리그 최다 안타 기록을 갈아치우며 타격왕에 오르는 등 맹활약할 당시, “너무 부럽다. 귀화를 추진하자”고 한국 이름 ‘이칠호’를 선사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한-일전을 앞두고 이치로가 “상대 국가들이 30년 동안 일본을 이기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입방정’을 떨어 한국 누리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치로에 대한 ‘호감’이 ‘비호감’으로, 그의 플레이에 대한 탄성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호언장담과 달리 실제 경기에서 자존심을 구긴 것은 이치로 자신이었다. 한국팀의 그림 같은 역전승은 이치로의 ‘범타’로 깔끔하게(?) 마무리됐고, 그는 경기 뒤 “굴욕적”이라며 방정맞은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이치로 입치료 하고 위치로.”(yoo6171) “이치로 할복하라!! 일본의 수치다.”(benposta) “향후 30년 동안 일본인은 이치로 대신 쪽팔리고 살아야 한다.”(hope2024) “배영수 선수 정말 열받는다. 이치로 엉덩이를 맞히냐. 주둥이를 맞혀야지.”(myeong)

세계 야구 최고의 기교파 타자 이치로는 ‘이칠호’ 대신 ‘275’ ‘입치료’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 사이트에서는 배영수 투수에게 엉덩이를 맞아 활대처럼 휜 이치로의 모습이 패러디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이치로가 입방아에 올랐다면 ‘실투’로 이치로 몸을 맞힌 투수 배영수는 인터넷에서 ‘의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배영수의 미니홈피는 ‘배 의사’라는 댓글이 넘쳐났고, 누리꾼들은 이치로 엉덩이 난타사건을 “애국지사의 도시락 폭탄 투척 의거와 맞먹는 배 의사의 도쿄돔 의거”(‘선녀와 남후끈’)라고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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