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엿 바꿔먹다.’
무언가를 엿과 바꿔먹는 일입니다. 갑자기 헌병이 생각납니다. ‘Military Police’가 아닙니다. 그냥 빈 병입니다.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가난하던 시절, 엿은 동심을 혹하게 하는 간식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변했습니다. 빈 콜라, 사이다병이 아무리 많아도 엿 바꿔먹기 힘듭니다. 엿장수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엿 바꿔먹을 수 있습니다. 언론계엔 가끔 엿장수가 출몰합니다. 기사 한 판, 빈 병 열 박스보다 더 쳐줍니다. 싸구려 엿으론 못 바꿔주지만, 그보다 백배천배 비싼 것과 교환이 가능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맘을 고쳐먹으면….
언론 비평지 <미디어 오늘>에선 “어느 신문 기사가 광고로 둔갑했다더라” 따위의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조지는 기사’를 막으려는 기업 관계자들의 로비가 치열합니다. 그들의 카드는 ‘엿’입니다. 그 엿이란 다름 아닌 광고나 협찬을 암시하는 당근이겠지요. <한겨레21>도 그런 유혹에 노출돼 있지만, 쉽게 기사를 엿 바꿔먹지는 않습니다.
이번호 마감을 하며 엿을 ‘구경’만 했습니다. 그 사연을 소개합니다. 수요일 저녁, 광고영업 담당자가 제 자리로 찾아왔습니다. 그러곤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삼성 기사 나가요?” 왜 그랬을까요. 이유인즉 “삼성 쪽에서 광고를 한쪽 싣기로 했는데, 기사가 안 들어가는 조건”이라는 겁니다. 결국 무시무시하게(!) 표지로 나간다는 대답을 듣고 그는 황망히 자리를 떴습니다. 알아보니, 다른 주간지 몇 곳도 같은 조건으로 제의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수천억원의 재산을 헌납키로 한 것은 박수칠 일입니다.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생존을 위한 포석으로 삐딱하게 해석한다 해도, 잘한 건 잘한 겁니다. 그 돈, 안 내놔도 그만일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이건희 회장의 통 큰 결단에 관해선 멋지다고 말하겠습니다.
반면 아랫사람들의 행태는 쪼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계산을 했을 겁니다. “시사주간지들마다 최소한 1~2쪽이라도 관련 기사를 다룰 게 분명하다.” 그런 뒤 “헌납의 배경을 놓고 흠집을 내려 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겠지요. 결국 이렇게 정리했는지 모릅니다. “잡소리 나오지 말게 하자.”
이건희 회장은 조건 없이 거액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삼성그룹의 실무자들은 그 거액의 발톱에 낀 때보다도 작은 광고를 집행하면서 치사한 조건을 단 셈입니다. 기사랑 엿 바꿔먹자고!
언론 자유의 선봉에 선 지사 흉내를 내려는 건 결코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광고가 안 실린 것에 악감정을 터뜨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단지 한국 최고의 일류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이 하는 일치고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뭐라고요? 유치하게 고자질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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