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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아냐, 저건 클론 황우석이야

등록 2005-12-23 00:00 수정 2020-05-02 04:24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사람들은 울었다. “교수님이 그럴 리가 없어.” 사람들은 목놓아 울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그의 태도도 꼿꼿하고 빈틈이 없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정보를 놓고 판단할 때 그는 전 국민을 상대로 ‘쌩쑈’를 펼친 ‘사기꾼’이거나, 양심을 집에다 잠시 빼두고 온 ‘불량 학자’임이 틀림없다. 그의 연구를 위해 “난자를 제공하겠다”고 몰려들었던 아줌마들도, 연구실 앞에 진달래꽃을 뿌렸던 팬카페 회원들도, 노벨상 수상을 위해 팔 걷고 나서겠다던 정치인들도 퀭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그의 해명 기자회견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풍성했다. 논문에 쓴 줄기세포 11개 가운데 6개는 오염됐고, 그 가운데 2개의 자료는 남아 있었는데, 또 6개를 만들었고, 5개는 현재 냉동 해제를 하고 있다. 냉동 해제를 하는 데는 10일쯤 걸리고, 아무튼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저게 무슨 말일까. 사람들은 또 울었다. 저건 분명 줄기세포로 복제된 클론(가짜)일 거야. 진짜 교수님은 어디에 계실까. 가짜에게 당해 재갈을 입에 문 채 지하실에서 신음하고 계실까. 이 모든 게 제발 꿈이기를.

“그럼 영롱이는 어떻게 되지?” 울다 지쳐 사람들이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롱이가 새끼까지 낳고 오래오래 살았다는 것은 찜찜한 일이다. 비슷하게 태어난 돌리는 약골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렇진 않을 거야.” 사람들이 용기를 내 말했다. 무엇보다, 해외 토픽 운운한 사람은 산부인과 의사인데다, 교수님은 무엇이든 세계 최초 아니면 관심을 안 갖기 때문이다. 영롱이는 영국·미국·일본·뉴질랜드에 이어 5번째로 성공한 복제 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수님은 영롱이를 낳고는 논문을 쓰지 않았다. “그럼 진실은 뭘까.” 사람들은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최초’가 아니니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쓰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거야.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어떤 충격이든 하루에 하나씩만 오는 게 교수님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인도적이다. 영롱이 때는 논문을 대필해줄 미국 소재 P대 S모 교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외쳤다. “이제 그만.” 사람들은 귀를 막았다. 4천만이 동시에 귀를 막는 광경이 해외 토픽이 되어 전세계 안방으로 중계되고 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몇몇은 모니터를 켜고 전쟁에 돌입했다. 교수님은 이제 ‘교주’가 됐고, 추종자들을 위한 ‘십계명’도 만들어졌다. 첫째 계명은 “나 말고는 내 줄기세포를 검증하지 말라”, 둘째 계명은 “MBC를 보지 마라”, 셋째 계명은 “국익을 망령되이 잃지 말라”로 이어졌다. ‘명바기’ 패러디 때 등장했던 영화 <옹박> 포스터의 얼굴 모델은 어느새 교수님 차지가 됐고, 크리스마스를 특집으로 ‘루돌프 사슴코’는 ‘영롱이 젖소 뿔’로 둔갑했다. 그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은 다시 울었다. 내일이면 지하실에서 신음하는 진짜 교수님이 나타나 사악한 ‘클론’을 무찌르고 줄기세포 11개를 내놓기를. “영롱이 젖소 뿔은 매우 반짝이는 뿔. 만일 내가 봤다면, 검증하라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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