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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치는 통계] +2.1%와 -0.2%

등록 2005-11-10 00:00 수정 2020-05-02 04:24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에서 한 농부가 삽을 사려고 수레에 돈을 잔뜩 싣고 가다가 강도를 만났는데, 강도가 돈은 버리고 수레만 챙겨갔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굳이 구매력이란 딱딱한 용어를 들지 않아도 ‘돈의 절대 액수’보다는 ‘그 돈으로 뭘 살 수 있는지’가 중요함을 사람들은 경험으로 안다.
지난 3분기의 경제성장률(GDP 기준)이 예상보다 높은 4.4%로 나타나 ‘웬 딴 세상 얘기?’라고 뜨악했을 이들이 많을 듯한데, 같은 시기 가구의 실질소득은 되레 줄었다는 소식이 곧바로 이어졌다. ‘그럼 그렇지!’ 통계청이 11월3일 내놓은 ‘2005년 3분기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농림어가 제외)의 월평균 소득은 294만9천원이었다. 지난해 3분기보다 2.1%(6만1천원) 늘어난 수준인데,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2.3%)을 감안한 실질 소득은 249만3천원으로 되레 0.2%(5300원) 떨어졌다. 수레에 실린 돈뭉치가 조금 늘어난 대신 수렛값은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오른 격이다.
전국 가구를 대상으로 한 가계수지 통계는 2003년부터 작성돼 그 이전과 비교하긴 어려운데, 통계청 추정에 따르면 실질소득의 감소세는 2002년 3분기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라 한다. 전국 가구 중에서 도시지역 근로자 가구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3분기 월평균 소득은 331만900원으로 지난해 3분기보다 3.0% 늘어났다. 물가상승률보다는 높아 실질소득의 감소세는 면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최저 증가율을 기록됐다.
경제성장률 지표의 호전과 달리 가구의 실질소득 증가세는 변변치 않게 나타난 건 수출이 주도하는 기업 부문의 경기 회복세가 가계 부문으로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이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투자 확대가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지 않고는 두 부문 지표의 엇갈림은 오래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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