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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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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장군님, 음식 가리지 마세요

등록 2005-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장군님은 입맛이 까다로우셨다. 그리고 성격도 포악하셨다. 장군님은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함부로 먹다 식탁 밑으로 버리셨고, 삐쩍 마른 백성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음흉하게 웃었다. 장군님의 얼굴은 돼지와 도깨비를 반반씩 섞어놓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장군님은 ‘똘이 장군’의 반격을 피하지 못하고 정의의 심판을 받으셨다.
또 다른 장군님도 입맛이 까다로우셨다. 그리고 성격도 더러우셨다. “아침식사가 준비됐다”는 보고를 듣고 “너 같으면 이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겠냐”며 신문을 말아 당번병의 따귀를 때리셨고, 심심하면 주변 사람들을 “멍청한 놈” “개만도 못한 놈”이라 부르며 폭언·욕설을 하셨다. 장군님의 만행을 주변에 알리고 싶었던 사람들은 중징계를 받았다. 장군님을 바로잡아줄 똘이 장군은 어디에도 없었다. ‘반공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서 별을 달지 못한 우리들은 늘 무력하다. 장군님 의견이 어떠진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있는 용한 병원에서 멘탈 세라피를 받길 권한다.

이번에는 장군의 손녀가 눈물을 흘렸다. 10·26 ‘사대빵 시리즈’의 최대 피해자는 선거 참패의 충격으로 지도부가 싸그리 사퇴한 우리당도, 울산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민노당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장군의 손녀’ 김을똥.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흘러간 인물 홍싸데기 전 의원에게 ‘올인’했다. 할아버지 백야 김좌진의 사진과 썩은 세상을 향해 아버지가 퍼부었던 똥바가지와 최근 들어 청춘 스타로 급부상한 아들의 잘난 얼굴까지 홍싸데기를 위해 쏟아부었을 때 그가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씨가 홍싸데기 전 위원을 위해 들인 노력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2000년 공천에서 탈락 위기에 놓이자 경기 난 어린애처럼 당사 바닥을 떼굴떼굴 굴러 살아남았던 임진출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임 의원의 추태를 놓고 말은 많았지만, 결국 그는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망가져도 주소를 잘 찾아 제대로 망가지면 본전은 건진다.

“미국놈들 싸가지는 알아줘야 혀!” 한동안 침묵을 지키시던 우리 동네 세탁소 박(47)씨 아저씨가 다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지난 6월10일 동두천에서 요구르트 배달 아줌마를 트럭으로 깔아 죽인 미군이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뒤였다. 미선이·효순이 때는 형식적인 재판이라도 열어 ‘무죄’를 땅땅 때리더니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이 입을 씻었다. 그대신 운전병은 추가 운전교육을 받았고, 그의 상관 3명은 “지휘를 잘못했다”며 서면 견책을 받았다. 미군들 눈에는 요구르트 아줌마가 운전교육장의 폐타이어 무더기로 보였나 보다. 필자가 미군 카투사로 근무할 때 만난 미군 일병은 술 먹고 상관에게 시비를 건 혐의로 ‘강등’됐고, 또 다른 병장은 군용차로 가로수를 들이받은 혐의로 역시 ‘강등’됐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그리고 한 번은 그보다 더 심한 비극으로. 가로수 한 그루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요구르트 아주머니. 편안히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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